매일신문

에로틱의 여신-실비아①

지금은 없어진 극장 중에 ㄷ극장이 있다. 남문시장 근처에 위치해 학생들의 출입이 잦았던 재개봉관이다. 재개봉관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그 넉넉함 아닐까. 미성년자에게도 성인영화를 볼 수 있는 문호를 넓혀 주었으니 말이다.

실비아 크리스텔의 '개인교수'마저 교복입고 볼 수 있었던 곳이니 참 여유(?)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교복을 입은 것은 아니다.

표 받는 아저씨: "어이, 너거 교복입고는 못 본다". 학생:"우예, 안 될까예?". 아저씨: "이눔의 자식들보라. 간딩이가 붓나". 학생: "아저씨, 표를 끊었는데 우짜라꼬예. 바꿀까예". 아저씨:"그라믄, 너거 웃통 벗어라"... .

런닝셔츠(사실 란닝구가 정겹다) 바람으로 "야, 우리 운 좋았다 그쟈?"라며 어렵게 들어갔다. 근데 이게 웬걸. 극장 안에는 런닝셔츠 바람의 까까머리들이 문화교실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시끄럽던 애들이 '개인교수'라는 영화를 보는데, 어찌 그리 조용하던지.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에라이~ 이눔들아 공부를 그리 해라. 하긴 필자도 마찬가지다.

'개인교수'(1981년)는 그 또래 아이들을 위한(?) 에로영화였다.

부잣집 아이 필리. 어느 날 미모의 가정부 멜로우(실비아 크리스텔)가 들어온다. 필리는 그녀의 몸에만 눈이 간다. 아는 지 모르는 지 멜로우는 몸을 살짝 살짝 드러내보이면서 애를 태운다.

급기야 저돌적인 필리를 위해 팬티를 내려 '여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성적(그 성적이 아님) 개인 수업. 나이차를 극복한 은밀한 데이트를 통해 필리는 성장한다.

실비아 크리스텔이 팬티를 내리는 장면은 검게 덧칠돼 나와 그녀의 히프라인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몇 녀석은 아랫도리를 감싸 쥐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멜로우 역을 당시 인기를 끌었던 육체파 배우 보 데릭이 맡았으면 어땠을까. 과연 그 만큼 알싸했을까.

실비아 크리스텔이 에로틱의 여신이란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혹자는 많은 에로 여배우들 중 하나로 그녀를 기억하겠지만, 필자는 다르다. 그녀는 옷만 발가벗은 네이키드(Naked)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여배우다.

사실 그녀의 육체는 그리 풍만한 편은 아니다. 에로틱한 여배우의 전형인 금발에 가슴 큰 여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왜소한 편이다. 시쳇말로 몸으로는 '안 땡긴다'. 그만큼 쟁쟁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여신'으로 칭송받는 것은 지적인 이미지때문이다.

그녀를 표현하는 절대적인 수식어에는 '공허한 아름다움'이란 말이 있다. 약간 멍한 듯하면서도 신비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이다. 그녀가 5개국어에 능통하고, 아이큐가 160이 넘는 수재였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집안도 '빵빵'하다. 1952년 네덜란드의 엄격한 칼빈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연기력의 '증거'를 하나 보자. '엠마뉴엘'(1974년)의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외교관의 젊은 아내가 이국 여행을 마치고 성애에 눈을 뜬다는 이야기다. 첫 장면은 얇은 가운을 걸친 그녀가 등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러나 갖가지 성적 경험 끝에 그녀는 드디어 성애의 극점에 도달하게 된다.

첫 장면은 상당히 청순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러나 마지막 이 장면은 짙은 눈화장을 하고, 너풀거리는 가운을 입고 등의자에 앉아 있다. 이제는 성애의 어두운 부분까지 체득한 성욕의 노예가 된 것이다. 좀 더 사악해지고, 닳고 닳은 이미지의 눈빛, 그것은 보 데릭이나 라켈 웰치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연기력의 산물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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