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이면에는 중화적(中華的) 패권주의가 깔려 있다.
"
왜 중국은 천문학적인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할까. 또 외교분쟁까지 감수하면서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 이같은 의문들에 대해 이문기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은 "동북공정의 핵심 강령이 바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라면서 "이것은 한족(漢族)만이 아닌 중국내 50여개에 이르는 모든 민족을 통합하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적 다민족국가 달성을 통해 국력을 극대화하고 세계의 패자로 군림하려는 것이 중국의 진정한 속셈이라는 것이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기인한 움직임은 중국 곳곳에서 벌써부터 가시화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악비(岳飛)에 대한 인식 변화다.
중국 남송시대 한족 출신의 무장으로 금나라의 침공에 맞서 싸운 악비가 얼마전까지는 충신의 표상이자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나 이제는 그저 그런 인물로 추락하고 말았다.
금을 세운 여진족도 한족과 같이 중화민족에 포함되는데 같은 중화민족끼리의 싸움에 앞장선 악비가 더 이상 영웅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작년 연말에 중국 교육당국이 개정한 교육대강은 "악비는 외국 침략에 대항한 인물이 아니므로 '민족 영웅'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비에 대한 중국의 인식 변화는 '중화민족주의'의 확대.강화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악비와는 달리 새롭게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 칭기즈칸이다.
몽고족을 이끌고 중국을 침입한 칭기즈칸을 한때 오랑캐라고 폄하했던 중국인들이 이제는 중화민족의 영웅으로 칭기즈칸을 떠받들고 있다.
몽고족도 중화민족에 포함되므로 몽고족의 영웅인 칭기즈칸도 중화민족의 영웅이란 등식에 따른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억지부리기'를 넘어 '못을 박으려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도 통일적 다민족국가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중국의 동북3성에 산재해 있는 조선족도 중화민족이며 그 역사도 중화민족의 역사란 것이 중국의 기본적 인식이란 지적이다.
이같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해 중국은 고구려 유적들까지 동원, '고구려는 중국사의 일부'란 그릇된 역사를 선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고구려사 부분 삭제, 중국 대학 역사교재의 고구려사 왜곡 등 전방위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국력이 강해지면 패권주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주변 국가들의 '중국 위협론'을 무릅쓰면서까지 고구려사의 자국 역사 편입에 목을 매다는 것은 바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나름의 판단에서다.
최근 큰 파문을 일으킨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고구려사 부분 삭제도 '허핑줴치(和平山屈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를 앞세운 중국의 외교정책보다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지향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 더욱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중국 정부가 민간 차원의 역사연구를 본격 지원하고 나선 데 대해 일부 학자들은 "중국의 패권주의가 부활한 것"이라면서 "개혁.개방 이후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사회주의를 민족주의로 대체하려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한 배경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변경소수민족 이탈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조선족 동요 문제, 둘째는 지금의 조선족 자치구인 간도 지역 등 남북통일 이후 한.중 변경문제, 셋째는 북한 지역에 대한 영유권 또는 지배권 문제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지금 중국은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도 중국사의 일부라는 입장"이라며 "이 경우 북한 전역이 중국의 옛 영토가 되는 것이며 중국은 만주 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북부에 대한 어떤 '개입'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사진: 중국은 지안시 광개토대왕비 인근에 있는 태왕릉을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확정하고 주변에 철책을 만드는 등 대대적인 정비를 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위안부 합의 뒤집으면 안 돼…일본 매우 중요"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