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몸은 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밟으면서 길을 버리고 온 것처럼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제 몸을 버리
고 여기 이르렀습니다. 사내들이 제 몸을 지나 제 길로 갔듯이 저 역시 제 몸을 지
나 나의 길로 끊임없이 왔습니다"
조선시대 명기 황진이는 모진 세월을 돌아 화담 서경덕과 마주앉은 자리에서 그
렇게 말한다.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길을 밟'았던 명월 황진이의 생을 다룬 소설 '황진이'가
나왔다(이룸펴냄). 현대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곤 했던 소설가 전경린의 작품이다.
전경린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제목을 듣고 아마도 처음엔 낯설겠지만 곧 반가
워할 것이다.
그 오랜 세월 '조선 최고의 기생'이라는 수식어로 수없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
렸던 황진이. 그는 시(詩)와 서(書)에 능했던 여성이 아닌, 지족선사를 파계시키고
서경덕을 유혹했던 '요부'로 인식돼왔다. 이 소설은 그의 거죽에만 머무르던 시선을
겹겹이 쌓인 그의 마음 속으로 안내한다.
황진이를 한낱 요부로 전락시켜온 스캔들은 이 소설에서 모조리 빠졌다. 서경덕
을 유혹하는 대신 진은 서경덕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또 서경덕
이 자신의 본질을 바라보던 '흰 구슬같이 맑은 눈빛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자애 속
에서 숨쉴 수 있도록 지켜줬다'고 말한다.
작가는 때로는 진한 향을 풍기는 한 송이 꽃처럼, 때로는 고요한 산길을 지키는
나무처럼 황진이를 바라본다. 작가의 펜 끝이 되살려낸 황진이는 오랫동안 시간의
틀에 갇혀 있다가 이제 막 문 밖으로 나온 것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작가는 "남성에게는 그들에게 대적할만한 대담한 인격과 신비로운 운명과 미적
권력을 가진 매혹적인 아니마로서, 여성에게는 실종된 여성성의 긴 공백을 단번에
메울 수 있는 존재론적 자유혼의 표상으로서, 진은 시대를 넘어서 거듭 불려 나온
그리운 이름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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