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右로만 가는 일본의 끝은...

2004년 1월1일, 일본 전통복장을 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차대전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2001년 8월, 2002년 4월, 2003년 1월에 이어 네번째였다.

같은 달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자민당 내각이 그동안 헌법위반으로 명시해온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단행했다.

패전 59년 만에 자위대를 전장터, 이라크에 파견한 것이다.

현대화된 무기로 군사강국으로 우뚝선 일본의 군국주의가 어디로 나아갈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작년 10월31일, 이사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는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총의(總意)로 일본을 선택한 것'이란 역사관을 밝혔다.

50여년을 거슬러 일제강점기, 도쿄대 교수였던 스에마쓰 야스가즈(末松保和)는 '왜(倭)가 369년 가야의 다른 이름인 임나를 정벌해 562년 신라에 뺏길 때까지 왜 왕권의 통치기관인 임나일본부의 통제 아래 두었다'고 주장했다.

스에마쓰 교수는 1933년 처음 '남한경영론'을 제기한 뒤 1949년 '임나흥망사'란 단행본을 냈다.

'1910년 일제의 한국지배 훨씬 이전에도 왜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약 200년간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의 시초였다.

◇ 아직도 움켜쥐고 있는 야욕

그랬다.

역사의 덧칠과 곱새김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도 일본의 고위관료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한일합방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고대 왜의 한반도 지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1945년 8월15일을 '패전'이 아닌 '종전'으로 규정하고, A급 전범의 위패를 둔 신사를 참배하는가 하면, 강제점령을 조선인의 '총의'로 우겨대고 있는 형편이다.

한반도를 35년 동안 유린했던 일본은 여전히 역사적 사실을 날조하고, 군국주의의 야욕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백제·가야와 교류하고, 고려·조선과 다투고, 급기야 한반도를 수십년간 유린한 일본. 2천년 세월 동안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오면서 한편으로 싸우고 다른 한편으로 교류해온 '가깝고도 먼 나라'. 현재 일본 사회에 깔려있는 역사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됐고, '자위대 파병'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군국주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광복절을 앞두고 전후(戰後) 일본 사회에 뿌리내린 역사인식의 실체를 파헤치고, 군국주의에 종지부를 찍은 1945년 원자폭탄 피해자들의 삶의 궤적을 다룬 두 권의 책이 눈길을 끈다.

'1945년 8월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도쿄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가르치는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가 쇼와 천황,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를 바탕으로 일본사회에 만연한 '모호한' 역사인식의 뿌리를 더듬은 책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 등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전후 일본사회는 '모호함'으로 규정되고 있다.

외교적 마찰을 무릅쓰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끊임없이 '평화헌법'을 유린하고 전쟁으로 향하는 일본. 국가주의의 가면을 쓴 채 올바른 역사인식의 작동을 정지시키고, 우익세력의 논리에 따라 일본 사회를 우(右)로만 이끌어가는 기제가 바로 '모호함'이란 것이다.

저자는 '패전'과 '전쟁책임'이란 언급이 없는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를 낱낱이 해부하고, 천황과 관련된 담론을 중심으로 전후 일본사회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 '우'로만 가는 기제 해부

미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 쓴 '다큐멘터리 히로시마'는 저자가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40여년 만에 히로시마를 방문, 원폭 피해자 6명의 고통스런 삶의 궤적을 담은 넌픽션 기록물이다.

1945년 당시 주석공장 직원이었던 사사키양, 개인병원 원장 후지이, 재봉사의 아내로 전쟁 미망인인 나카무라 부인, 독일인 신부 클라인소르지, 적십자병원 의사 사사키, 훗날 평화운동에 뛰어든 목사 다니모토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인 이들 민간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떤 고통을 겪었으며, 어떻게 평생을 살아왔는지 그 궤적을 담았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