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갈수록 역사분쟁의 소용돌이에 깊이 휘말리고 있다.
안으로는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대의 '과거청산' 문제로 갈등이 증폭되고 있고, 밖으로는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과 역사분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본과는 오래 전부터 우익 역사교과서의 식민지배 미화 문제로 갈등이 증폭되어 왔다.
최근에는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위치 지우는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촉발된 고구려 역사분쟁으로 한중 두 나라의 선린우호 관계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고구려 역사분쟁은 그 어떤 역사분쟁보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은 역사학계의 학문적 비판을 넘어 역사교사들의 '삼보일배' 항의 시위와 시민사회의 저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국회 내 위원회 설치가 검토되고 있고 국회의장, 국무총리, 대통령까지 나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언론은 일제히 중국 특집을 마련하여 중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중국 견제론을 설파하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이 빼앗아간다면 우리는 고조선사도 발해사도 잃게 되며, 이것은 바로 한민족의 뿌리를 송두리째 잃게 되는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고구려 역사분쟁이 우리의 일상을 점령해 버린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분석한 것처럼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은 대한민국의 주도로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일어날지 모를 중국 동북 지역 조선족 사회의 동요와 한중 양국간의 영토분쟁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마련된 것이다.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의 시도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를 중국사의 공간적 범주로 규정하고 국민국가의 주권개념을 먼 과거 그대로 투영하는 시대착오적인 역사인식을 특징으로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학술적 연구라기보다는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주변국의 역사 기억과 역사 주권을 부정하고 동북아에 대한 중국의 패권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패권주의에 대한 우리의 비판과 경계는 지극히 정당한 것이며, 호혜주의와 평등주의에 기초한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그러나 고구려사 역사분쟁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방식에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일부에서는 한민족의 역사를 빼앗기는 민족정체성의 위기를 운운하며 민족의 얼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책적으로는 중.고등학교 사회과목에서 국사 과목을 독립시키고, 대학의 국사 과목도 교양 필수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고구려사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고구려연구재단의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처럼 국사 교육을 강화해서 민족의 얼을 바로 세워 중국의 역사왜곡으로부터 우리의 역사를 지키자는 민족주의적 주장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고구려 역사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는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을 시정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는 한중 양국간에 고구려사 인식을 둘러싼 대립을 화해시키고 중국의 패권적인 역사인식을 시정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대립적인 역사인식의 화해를 위해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이에 맞서 고구려사를 한국사의 일부로만 파악하려는 우리의 역사인식 모두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배타적 민족주의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의 과거가 자기 민족만의 독점적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야말로 고구려 역사분쟁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첨예하게 충돌하는 역사인식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독점할 것이 아니라 '과거는 외국'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구려의 경우 한반도와 만주, 대륙의 서로 다른 문화와 종족이 융합되어 만들어간 역동성과 다양성의 역사 공동체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의 역사를 한국사나 중국사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귀속시킬 것이 아니라,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고구려인들의 역사로 복권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국사 교육을 강화하여 우리만의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을 강화하기보다는 동북아시아 전체의 시각에서 열린 시야로 고구려사를 보는 능력을 기르는 보편주의적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전현수 경북대교수.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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