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포럼-흔들리는 한국사회

최근 한국사회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혼란스럽다.

이것이 과연 단순한 전환기의 모습일까, 아니면 심각한 사회해체의 과정인가?

많은 사회과학자가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를 문명사적 전환기라 했다.

소품종 대량생산, 매스컴, 대중사회, 국민국가 등으로 대표되는 산업사회가 끝나고, 다품종소량생산, 뉴미디어, 네트워크사회, 지구촌 등 새로운 차원의 문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질문명이 인간의 의식구조나 사회제도보다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는 어느 정도 혼란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한국사회는 너무 흔들리고 있다.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나약한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상징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고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구성원들 간의 가치합의와 상호신뢰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에는 수많은 가치관의 균열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사회적 신뢰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우선 개인과 사회에 대한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인적 욕구를 어느 정도 억제하고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에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가 분출되면서 개인적 주장이 사회질서를 압도하고 있다.

인권의 이름으로 엄연한 실정법이 사문화되는가 하면, 양심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이 거부되기도 한다.

권문세가의 병역기피야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최근에는 수십 명의 프로 운동선수들과 유명 연예인들이 신장이나 척추질환 등을 앓고 있는 것처럼 조작하여 병역을 기피했다고 한다.

19세기에 위대한 정치인이나 군인이, 20세기에는 성공한 기업인이 대중적 영웅이었다면, 21세기에는 인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새로운 대중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병역의무를 짓밟은 것이다.

변명인 즉, 군에 입대하면 공백기로 인해 활동에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직업인들 중요하지 않으며, 어느 개인의 인생인들 중요하지 않겠는가? 바로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 병역의무가 필요한 것이다.

그 외에도 개인이 처한 입장과 위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수많은 다양한 시각들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이나 위도 핵폐기물 처리사업, 북한산국립공원 터널공사 현장에서 나타나듯이 개발과 환경보전의 가치가 극한적으로 대치한다.

도로공사 현장에서는 인근 주민들끼리 첨예한 이해갈등이 전개되고, 쌀 시장을 둘러싸고는 농민과 수출산업체의 입장이 대립된다.

교육현장의 한편에서는 평등을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생산성과 경쟁력의 약화를 걱정한다.

물질적 가치와 도덕윤리의 대결에서는 일찌감치 물질주의가 압도했다.

이제는 재미와 쾌락의 욕구가 인륜과 법질서까지 밀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다.

미래학자인 다니엘 벨이 이미 1960년대에 종언을 예언했고, 1989년부터 세계적으로 백일하에 드러난 해묵은 이데올로기 논쟁이 한국에서는 지금 불타오르고 있다.

21세기는 다원사회이다.

수없이 많은 상반된 현상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사람들마다 다양한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갖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일견 상반돼 보이는 현상들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자신과 다른 생각,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다원주의적 가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채, 오로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우군과 적군 등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조장되고 있다.

새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고 새로운 규범과 사회적 신뢰를 확산시키는 것은 엘리트 집단의 역할이다.

20세기 구시대의 타락한 정치인, 부패한 기업가에 이어 새 시대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 운동선수까지 오로지 돈과 자신의 안락을 위해 국가기반을 침식하니, 국민들이 누굴 믿고 새 질서를 지키겠는가? 그래서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배 규 한 (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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