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면서도 더러 개구쟁이티를 보이는 한 후배가 e메일을 보내왔다.
"폭염이 가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역시 또 오네. 43년 동안 한 번도 안 속았네."
하긴 계절의 수레바퀴는 단 한 번도 와야할 때, 가야할 때를 잊지 않아서 어느새 또하나의 새 가을이 우리 곁에 와 있다
독일의 시인 쉴러는 시간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오늘따라 그 의미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며,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
가을운동회 시즌인가 보다.
색동옷을 입고 꼭두각시춤 연습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신문지면으로 보며 비로소 가을임을 실감케 된다.
가을운동회!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도 담겨 있는 가을운동회(특히 시골학교의)는 지금 40,50대 이상 세대들에겐 가슴시리게 그리운 유년(幼年)의 풍경화이다.
운동장엔 만국기가 신이 나서 펄럭이고, 하얀 띠, 파란 띠로 이마를 묶은 아이들이 목청껏 내지르던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 출발 총소리에 화들짝 놀라 노루새끼처럼 냅다 뛰던 아이들, 뒤처진 손자손녀들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부상으로 받은 공책에 어깨 우쭐거리던 머스마들....
점심시간이면 먼데, 가까운데서 온 친척, 이웃사촌들까지 합쳐 삼삼오오 모여앉아 커다란 보따리를 풀었다.
흥부의 박에서 쏟아지듯 자꾸만 나오던 삶은 계란, 밤, 땅콩, 찐 고구마, 반질반질 새빨간 홍옥, 우툴두툴한 김밥. 운동회 같은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었던 상투과자(밤과자), 그리고 말표 사이다.
...
가을운동회는 흥겨운 마을축제였고, 떠꺼머리 총각과 능금 같은 뺨의 아가씨들이 남몰래 눈을 맞추는, 연풍(戀風)이 살랑거리던 곳이기도 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이젠 가을운동회도 옛날과는 천양지차인 것 같다.
공책 한두권 타려고 죽을둥 살둥 달리는 아이들도 없고, 어른들도 그다지 흥을 내지 않는다.
커다란 점심보따리 대신 배달된 피자와 프라이드 치킨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순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가을운동회철이면 왠~지 코를 칵 찌르던 말표사이다가 유난히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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