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대형 포식동물은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대형 포식동물 앞에서 인간은 한낱 고기 덩어리로 전락할 수 있었다.
거대 포식 동물들은 인류에게 공포심과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자연계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일깨워주곤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위험했던 전쟁은 대형 포식동물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면서 대형 포식동물은 이제 인간에 의해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은 그 길고도 위험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일까.
1900년대 초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해로운 들짐승'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정부는 애리조나 주 북부에 위치한 케이밥 고원에서 1906년부터 25년 동안 퓨마, 늑대, 코요테 등 포식동물을 6천 마리나 없앴다.
당초 보호 구역 안에는 4천 마리의 사슴이 살고 있었는데 포식 동물이 사라지면서 사슴 개체수는 1923년에 무려 6만~7만 마리까지 불어났다.
굶주린 사슴들은 식물들의 어린 싹까지 먹어치웠다.
생태계 질서는 급격히 붕괴됐고 보호 구역 안의 사슴 수도 1931년 2만 마리, 1939년 1만 마리로 급감했다.
케이밥 고원에서 벌어진 일들은 포식동물 제거가 뜻하지 않게 생태계에 부정적인 결과를 빚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대형 포식동물이 사라지면 중간 크기의 포식동물과 초식동물, 그리고 식물의 씨를 먹어치우는 동물이 크게 증가해 오히려 생태계 붕괴가 빚어진, 최상위 포식자를 없앤 생태계는 단순해지고, 그에 따라 종의 멸종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루즈벨트가 범한 오류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대형 포식동물의 멸종은 인류의 승리가 아니라, 재앙이다.
자연 생태 저술가 데이비드 쾀멘이 지은 '신의 괴물(원제 Man-eater)'은 대형 포식동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함으로써 인류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여러 대륙과 학문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지적 여행담이다.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대형 포식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오지 네 군데를 찾아갔다.
아시아 사자가 살고 있는 서부 인도의 기르 숲, 소만 악어를 조상으로 숭배하는 호주 북부의 아넘랜드 보호구역, 갈색곰과 양치기가 불안하게 공존하는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 산맥 목초지, 시베리아 호랑이가 살고 있는 러시아 극동지역의 눈덮인 강 골짜기로 독자를 인도한다.
'신의 괴물'은 무섭고 놀라운 짐승에 대한 보고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인류의 교만과 그 위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쾀멘은 대형 포식동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면서도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2150년 이전에 대형 포식동물이 모두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책 제목 '신의 괴물'은 대형 포식동물을 지칭한 용어이지만, 오히려 인류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같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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