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작곡가 윤이상 사망

한국인으로 서양 고전음악계의 최고 거장의 하나로 알려진 작곡가 윤이상(尹伊桑) 선생이 1995년 11월 3일 독일 베를린의 발트 병원에서 폐렴으로 숨졌다.

1917년 9월 17일 경남 통영(지금의 충무)에서 태어난 윤 선생은 14살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1935년 오사카(大阪)음악학교에 입학, 작곡수업을 받은 뒤 1937년 귀국했다. 1946년부터 통영여고'부산사범학교 교사로 재직한 윤 선생은 1956년 프랑스 파리국립음악원에서 수학하고 베를린에서 블라허에게 사사했다.

1959년 독일에서 열린 다름슈타트음악제 때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正樂) 색채를 담은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유럽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 선생은 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로 강제소환, 2년간의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세계 음악계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풀려난 뒤에는 독일에 정착해 1971년 독일에 귀화했다.

귀화 후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축하 오페라에서의 '심청'을 비롯,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광주여 영원하라'(1981),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초연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7) 등 15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세계가 알아주는 음악거장 윤이상 선생이지만 분단조국으로 생긴 상처로 그는 두 번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생을 마쳐야만 했다.

▲1878년 한말 의병장 신돌석 출생 ▲1929년 광주학생 의거 ▲1946년 일본, 재무장 포기 선언한 신헌법 공포 ▲1979년 박정희 대통령 국장 거행.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