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가야의 옛 도읍터 고령

대가야 역사의 흔적이 숨쉬는 고령군은 대구 근교에서 가장 역사성이 있고 자연미가 넘치는 지역이다. 신라에게 철저히 패배한 역사의 질곡 속에 대가야의 흔적은 1천수백년이 지난 지금 복원하기에 너무나도 많이 훼손됐다. 먹고살기에 바빴던 시절, 우리 조상들이 금귀고리를 녹여 반지를 만들고 토기나 항아리는 축구하듯이 발로 차 깨버렸다. 일본인들은 도굴꾼들로부터 헐값에 이를 매입해 일본으로 반출한 안타까운 과거를 고령군은 담고 있다.

대가야 고분군과 주산산림욕장을 가는 주산 입구에 들어서면 산길 좌우 숲을 이룬 큰 키의 도토리나무가 반긴다. 30~40년 전만 해도 주산은 헐벗은 모습으로 삭막하기 그지없었으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강력한 산림법으로 단 한 그루도 허가 없이 남벌하지 못하게 되었고 나무연료가 연탄으로 바뀌면서 숲이 조성되기 시작해, 지금은 일대가 도토리나무, 리기다 소나무, 재래종 소나무, 산 벚나무, 철쭉꽃단지 등으로 계절마다 장관을 이룬다. 청설모가 가끔 두리번거리다 가까이 가면 쏜살같이 달아나곤 하고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뚫느라 '따르르…' 숲의 정적을 깬다.

주산에서 관리인으로 7년간 산에서 살아온 이의수(72'고령읍 연조리)씨는 주산 산림욕장이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면서 서울을 비롯해 부산, 울산, 인천, 충청도 등지에서도 등산객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주산에는 딱따구리를 비롯해 청설모, 줄무늬 다람쥐, 토끼, 고라니, 꿩도 있으며 봄에는 뻐꾸기도 인근 들에서 날아와 숲속에서 구슬픈 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산림욕장 입구는 가파른 아스팔트길이라 실망감이 앞서지만 조금 가다 충혼탑을 지나면 자연 그대로 흙땅을 밟을 수 있다. 입구 부근에서 산 중허리까지는 도토리나무로 뒤덮여 있고, 곳곳에 있는 유명시인들의 시비는 등산객들이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한 수 읊으며 쉬어가는 곳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월담정시(月潭亭詩)가 눈에 띈다.

'가야국 옛 무덤은 산 위에 이어지고

월기(고령읍 지산리) 쓸쓸한 마을은 없어졌다 다시 사네

어린 풀은 아롱아롱 봄기운이 한창인데

겨울이면 말랐다가 이듬해 그 혼 다시 돋네'

올해는 도토리나무 꽃이 필 때 서리가 내려 도토리묵이 귀하다. 등산길 주변에는 고령군이 5년전부터 산벚나무를 식재했지만 아직 큰 나무에 가려있고 줄기가 어린이 손목정도로 가늘다.

주산에서 남쪽방향으로 뻗은 산은 고분군이 밀집한 곳으로 요즘 일제당시 국도개설을 위해 잘려나간 고분이 연결되는 산자락을 잇는 지맥잇기 사업이 끝나면 1.5km에 불과하던 고분군 산책로가 3.7km로 지금보다 2배 이상 길어진다. 대가야 고분군은 주산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300여m떨어진 곳에서부터 산 정상 부분에 둘레가 수십 여m가 넘는 대형고분 300~400여기가 4lm 길이로 연결되어 있다. 겨울에 접어들자 푸른 잔디가 누렇게 변해 있지만 말끔히 정리된 채 잡초가 별로 없이 힘들게 가꾼 흔적이 역력하다.

고분군 아래 국도 변에는 대가야고분 중 가장 규모가 큰 순장묘인 44호 왕릉전시관이 있다. 대가야의 대표적인 구경거리. 규모도 크지만 왕이 서거하자 시종 30여명을 순장했다.

남쪽으로 뻗은 고분과는 달리 주산에서 서쪽으로 연결된 미숭산 등산길은 가벼운 등산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산이 나지막한데다 숲이 좋아 등산길 내내 그늘이 이어진다. 여름철이면 여성들의 고운 피부가 그을릴 염려가 없어 인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등산길은 거리에 따라 주산입구에서 주산정상, 청금정, 반룡사, 미숭산(8㎞) 등으로 조정할 수 있다. 등산길에는 고령군화인 철쭉꽃 단지가 있어 봄철 한 때는 장관을 이루며 연인들끼리 사진배경으로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쉬고 있다.

널찍한 주차장에서 한 모금 물을 마시고 가파른 산을 올라가면 미숭산 가는 중간지점에 우뚝 선 청금정이 숨가쁜 등산객을 맞이한다. 악성 우륵 선생이 대가야의 가실왕의 명을 받들어 가야금을 만들어 연주하던 속칭 '정정골' 마을(고령읍 쾌빈3리)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가야금소리가 울린다는 뜻에서 청금정이라 이름을 지은 팔각정이다. 맑은 날에는 대구시 두류타워, 달서구 지역 등이 보이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우곡면 대바우 나루터와 경남 창녕군 이방면을 흐르는 낙동강이 가물가물거린다.

조금 가다 산을 내려가면 해인사보다 역사가 깊은 곳이지만 규모는 작은 반룡사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스님에게 말만 잘하면 몸에 좋은 국산차도 한잔 대접받을 수 있다. 이 사찰은 조계종 동화사 말사로 여승이 두 번 부임했다가 지금은 비구니 보의 스님(설창헌씨)이 책임지고 있다. 13층 석탑이 있었지만 군이 도난을 우려해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내년에 도난 경보시설을 설치한 후 현지에 옮길 계획이다.

다시 산 정상 부분으로 올라가 솔잎 향기가 가득한 산길을 한참 가다보면 훤히 뚫린 미숭산을 오르게 된다. 미숭산 서북방향으로 수려한 가야산이 가야의 건국신화를 말없이 간직한 채 바짝 다가오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바위 끝 정상을 밟고 조금 내려오면 잔디로 조성된 넓게 펼쳐진 헬기 착륙장이 단체관광객들에게는 음식을 먹고 각종 게임이나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숭산 아래 산자락에는 경남 합천군이 조성한 청소년 수련원이 있어 주산과 미숭산 편도 등산객들은 차량을 주산이나 미숭산 아래 청소년수련원 한곳에서 내려 차량을 반대편으로 보내고 등산을 즐기면 된다.

또 주산에서 경남방면으로 5km쯤 떨어진 쌍림면 월막리에는 폐교된 월막초등학교터에 세운 문화학교가 있다. 이곳은 안준영씨가 해인사 팔만대장경 복원을 위해 연구실을 운영하며 체험교실을 아울러 운영, 매년 각급 초'중학교 학생들 및 관광객들의 체험 실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판각체험으로 교훈, 가훈, 그림 등을 직접 판각해 먹을 묻혀 종이를 문질러 판각 인쇄를 할 수 있어 실속 있는 체험교육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다도 체험 공간도 있어 조용히 차 한잔을 들이켜며 명상을 즐길 수 있다.

주산 고분군 주변에는 지금 대가야테마공원조성, 박물관 내부전시공사, 낙동강 녹화기념숲(금산) 조성사업이 착공 또는 설계 중이며 고령여중학교와 여자종합고등학교부지는 2006년부터 대가야문화밸리 조성지로 군이 매입해 관광객을 위한 공간으로 개발된다. 막대한 사업비가 들지만 군은 인근 군(합천 성주 달성군)과 공동으로 협의체를 결성해 가야문화권의 국책사업승격을 공동으로 요청하기로 해 성과가 기대된다. ?

고령'김인탁기자 kit@imaeil.com

*어떻게 가나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고령정류장에서 내린 뒤 걸어서 주산까지 3km쯤 걸어 도달한다.차량으로는 대구 구마고속도로를 진입한 뒤 88고속도로로 빠져 성산 I.C에서 내리면 된다. 이어 국도로 달려 금산재를 넘어 주산입구에 주차하면 된다. 국도 26호선이 오는 연말 준공할 예정이어서 내년부터는 성산I.C에서 내려 곧 새로운 4차선 국도를 타고 금산재를 터널로 통과하면 수월하다.

*무얼 먹나

고령읍 고아리 정의선(66)할머니는 20여년동안 도토리묵만 만든 묵 할머니다. 올해 도토리 흉작으로 남은 것 만들고나면 다음 시장일인 12월 4일 묵이 끝난다고 했다. 예년같으면 내년 2월까지 만들어 팔았지만 도토리가 없어 일찍 품절된다는 설명. 한 모에 4천원. 054)954-1138.

고령수산가게 앞에 배화자(70)할머니는 40년 동안 돼지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 1그릇에 3천원이며 선지국도 3천원으로 인기있는 식사. 054)955-4018.

국수집으로는 구 군청자리에서 고령축협으로 자리를 옮긴 가야식당이 일품. 3대 53년간의 전통을 자랑하는이 식당의 국수는 한그릇에 2천500원이며 돼지고기 1접시는 8천원(3~4인용)으로 연탄불로 구워낸다. 054)954-3060.

고령'김인탁기자?kit@imaeil.com

사진: 주산 삼림욕장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고령의 명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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