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베를린에서

어수갑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단 4시간이었다.

1989년 6월의 어느 날, 당시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유럽민협) 총무였던 독일 유학생 어수갑은 평양에서 열리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베를린에 온 임수경을 자신의 집에 데려가 밥을 먹여주고 옷을 내줬다.

어수갑이 임수경과 보냈던 시간은 고작 4시간.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그는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됐다.

그가 몸담고 있던 유럽민협은 '반국가단체'로, 그는 반국가단체 주요 종사자이며 간첩보다 더 거물급에 해당되는 '공작원'으로 몰렸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북한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지령에 따라 반국가 단체인 유럽민협이 전대협에 지시해 임수경을 평양 축전에 보낸 것이라고 발표했다.

안기부가 검찰로 사건을 송치하면서 그를 '제1피의자'로, 임수경씨를 '제2피의자'로 올렸을 정도였다.

그후 1990년대 초반까지 그는 '밥을 먹는 횟수만큼 자살을 생각'하며 살아야했다.

아내와 헤어지고 세탁기를 놓을 공간조차 없는 집에서 어린 아들과 단 둘이 간신히 연명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노모는 만날 수 없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렸다.

생활고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태도였다.

'공작원'이 된 그와의 만남을 사람들은 기피했다.

특히 같은 배를 탔다고 믿었던 유학생 '동지'들까지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철저한 고립무원에 빠진 그에게 독일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베를린에서-18년간 부치지 못한 편지'는 임수경 방북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공개 수배되면서 10여년 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 베를린을 떠돌며 살았던 유럽지역 민주화운동가 어수갑씨의 산문집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생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질곡의 수배자 생활을 거쳐 이제는 일상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저자의 치열하고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또 유럽 내 민주화의 운동의 역사와 저자가 바라본 독일 사회의 모습, 한국 사회에 바치는 애정어린 고언들이 담겨 있다.

자살을 생각하며 찾은 알프스의 어느 산속.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장소를 찾아 헤매던 저자의 눈에 눈밭을 헤치고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이 비쳤다.

들꽃이 보여준 '생명의 경외'에 눌리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밭에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깊고도 긴 좌절의 시간에서 새로운 희망을 퍼올린 그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으로 넓혀갔다.

병들어 죽어가는 독일 노인들의 기저귀를 갈고 성당에 나가 장례 일을 도우며 지극히 낮은 자세로 살았다.

그 결과 1996년에는 '모범 외국인'으로 선정돼 독일 대통령의 초대를 받았고 1999년에는 함세웅 신부의 주선으로 귀국해 10년동안 그를 짓눌러온 수배자라는 굴레를 벗었다.

그는 '경계인'이기보다 '교량인'이 되길 원한다.

교량인은 남과 북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화해자'가 되는 사람이다.

"내 생의 화두는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민족에 대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나이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방법이 달라지고 양상이 변하였지만, 사랑만이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 그가 불온한 시대를 온전히 불우하게 살았던 이들과 좀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고 애쓰는 모든 이들, 특히 순정한 젊은이들에게 이 글을 바치는 이유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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