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도토리 신랑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울 적에 어떤 색시가 시집을 갔는데, 연지 찍고 곤지 찍고 활옷 입고 족두리 쓰고 신랑을 맞이하려고 초례청에 썩 나서 보니, 아이쿠 세상에 이런 변이 있나. 신랑이 엄청 조그마하네. 얼마나 조그마한고 하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도토리만 하더라지.

그래서,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신랑이 안 보이더래. 허리를 굽히고 엎드려서 바닥을 잘 살펴봐야 겨우 신랑이 보이더란 말이지. 아이고 세상에! 그래도 신랑이니까 어떻게 해. 아무리 작아도 신랑은 신랑이니까 같이 살아야지.

첫날밤에 신랑 각시가 음식상을 받아 놓고 먹는데, 마침 밤이 한 소쿠리 들어왔어. 그래서 밤을 까 먹고 나서 껍데기를 물그릇에 담아 놨지.

그런데 밤을 다 먹고 나서 보니 신랑이 안 보이더래. 허리를 굽히고 엎드려서 방바닥을 들여다봐도 안 보여. 온 방구석을 이 잡듯이 뒤져도 없어. 대체 어디 갔을까?

신랑 잃어버렸다고 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이 때 물그릇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래. 가만히 들어 보니,

"에야디야 에야디야, 노 저어라 에야디야."

하고 청승맞은 뱃노래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래도 신랑 목소리 같거든. 물그릇 안을 요렇게 들여다봤더니, 아 글쎄 신랑이 그 안에서 밥 껍데기를 배 삼아 타고 성냥개비로 노를 저으면서 뱃노래를 부르고 있지 뭐야.

"에구머니, 서방님이 밤 껍데기 배를 타고 물그릇 안에서 물놀이를 하네."

색시는 신랑을 젓가락으로 꺼내어 삿자리 위에 올려 놨어. 그래 놓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삿자리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야. 가만히 들어 보니,

"영차, 영차!"

하고 용을 쓰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번에도 신랑 목소리 같거든. 삿자리를 들치고 요렇게 들여다봤더니, 아 글쎄 신랑이 그새 삿자리 안에 들어가서 벼룩하고 씨름을 하고 있지 뭐야. 벼룩하고 신랑이 서로 괴춤을 붙잡고 엉겨붙어서 '영차 영차' 하면서 씨름을 하고 있더란 말이지.

"에구머니, 서방님이 벼룩하고 씨름을 하네."

색시는 신랑을 집게로 들어내어 이부자리에 곱게 뉘어 줬어. 그래 놓고 잠을 잤지.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또 신랑이 온 데 간 데 없네. 아무리 찾아도 없어. 그릇이란 그릇은 다 뒤져 보고 삿자리란 삿자리는 다 들쳐 봐도 없는 거야.

"아이고, 이제 우리 서방님을 영영 잃어버렸구나."

색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었어. 한참 울다가 보니 저 아래에서 또 무슨 소리가 들리더래. 가만히 들어 보니 누군가 '에취 에취' 하고 재채기를 하더라네. 눈을 비비고 들여다봤더니, 아이고 세상에, 신랑이 버섯 우산을 받치고 '에취 에취' 재채기를 하고 있지 뭐야. 색시가 흘린 눈물 때문에 감기가 든 거지.

그 뒤로 색시는 신랑한테서 한 시도 눈을 안 떼고 살아서, 그 다음부터는 신랑 잃어버리는 일 없이 잘 살았더래. 오래 오래 살아서, 둘 다 아흔아홉 살 하고도 아흔아홉 살을 더 살았더래.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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