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철학을 갖고 놀다

원숭이는 왜 철학교사가 될 수 없을까-거꾸로 읽는 철학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가장 중요한 학문 중 하나가 바로 '철학'이었다.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일이다. 먹고 사는 일과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철학이 어째서 중요한 학문이란 말인가. 더욱 흥미로운 일은 프랑스에는 우리나라의 논술시험과 비슷한 '바칼로레아'라는 대학 입학자격 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가 되지 않는다면 답안을 써낼 수 없기 때문. 이 시험이 한국에도 적용된다면 분명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당장 교육부로 뛰어갈 것이다. "국'영'수도 아닌, 말도 안 되는 질문의 답안을 찾는데 말씨름이나 늘어놓는 철학을 어떻게 감히…."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자위한다"

그들에게 '모든 학문의 시초이자 기반이 철학이며, 인간의 삶과 무척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설득하려 한다고 해서 먹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실생활에 전혀 쓸모없는 내용들로만 이루어진 '죽은 철학'만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죽은 철학에 질린 사람들의 속을 후련하게 할 만한 책이 나왔다.

'원숭이는 왜 철학교사가 될 수 없을까-거꾸로 읽는 철학'은 언어 비틀기, 유머와 반어법으로 그동안 얼토당토않은 질문들의 답을 찾는 일로 하품만 나오게 한 죽은 철학을 꼬집는다. 대신 사람들에게 '즐거운 철학 하기'의 기쁨을 알려주는 데 골몰한다.

저자인 미셀 옹프레는 주로 도발적이고, 전통을 파괴하는 논지의 글을 통해 절대자유주의를 표방한 프랑스 한 고등학교 철학교사다. 이 책의 원제는 '앙티마뉴엘 드 필로소피(Antimanuel de Philosophie)'. 저자의 유려한 산문체로 기존의 철학 세상을 뒤집어보는 쾌감을 선사한다.

*기상천외 질문…뒤집어 보는 쾌감 선사

저자의 황당한 질문 하나. 혹시 사람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 이것도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한 질문일까. 책에는 이런 질문이 26가지나 더 나온다. 이 책의 매력은 그동안 철학을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한 '고귀한 질문'(가령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와 하이데거가 논쟁했던 질문인 '왜 무(無)가 아니라 존재가 존재하는가')들에서 벗어나 재기 발랄하면서도 현실성을 놓치지 않은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철학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발음하거나, 외우거나, 사용하지도 못할 여러 어려운 용어들도 퇴출당했다.

철학교사인 지은이는 앞의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놨을까.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프랑스의 도르도뉴에서 발견된 유적을 통해 수천 년 전 사람들은 인육으로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1세기에도 이러한 식인 풍습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야만으로 규정짓고 밝히기를 꺼리는 것뿐이다. 식인 행위는 야만적 행위라고 하기보다는 정제된 문명 및 관습에 더욱 가깝다. 확실히 우리와는 매우 다르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인 것이다."(45쪽)

우리에게 언제나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수치스런 행위이지만 절대 없어지지 않는 자위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생뚱맞다. 저자는 자위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행위인지를 정신분석학이 이미 증명했다고 강조한다. 학자들은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위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인간은 아주 '순수한' 나이 때부터 자위를 하는 셈이다. 다만, 창세기에서 하느님의 말을 어긴 '오난'(자위를 맨 처음 한 사람)을 저주하기 위해 자위는 문화적으로 억압됐고, 이후 과학이 '자위 죽이기'에 냉큼 나섰다는 저자의 주장은 흥미롭다.

*현학에 자아도취 된 철학 건져내

저자의 촌철살인은 그칠 줄 모른다. 대통령을 위시한 지구상의 모든 지도자들을 그는 거짓말쟁이라고 비아냥댄다. "51%의 지지율을 얻기 위해 정치인은 유권자들에게 아첨하고, 유혹하고, 감언이설로 꾀고, 밝은 미래를 공약한다. '표심을 잡기 위해' 온갖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들을 전부 지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중에 그 약속들이 '대다수 국민정서'에 안 맞는다고 이야기하면 그만이니까."

저자는 철학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어 마침내 스스로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삶을 계획하길 바라고 있다. 또 책을 읽다 보면 '철학은 고리타분한 학문'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는 그의 마음이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만한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철학은 지루함과 어려운 말로 도배된 현학적 자아도취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시선을 붙잡는 책 말미의 한마디. "철학 선생님을 살려두자." 416쪽. 1만9천800원.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