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춘양, 그곳엔 옛 영화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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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선 철로를 개설할 때 직선 구간인 철로를 춘양 시가지를 경유하도록 '억지로 노선을 변경'해서 '억지춘양'이란 말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간직한 곳. 붉은 빛이 돌아 적송으로 불리는 '춘양목(春陽木)의 집산지요, '경북의 시베리아'로 알려진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우구치 마을. 춘양면 소재지에서 88번 준 국도를 따라 영월방면으로 약 20km 가면 도계 접경지역인 우구치마을에 이른다.
이곳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내리마을로 갈라지는 한 마을 두 동네가 있다.
폐광의 흔적들이 역력한 우구치 마을은 빈 집이 더러 있지만 아직 폐촌은 아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보이지만 여전히 10여가구가 오순도순 삶의 터전을 일궈가고 있다.
물론 1970년대 금광의 영화가 사라지고 하나 둘 떠나면서 우구치 마을의 역사도 함께 변했지만.
임병도(59·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씨는 "금광개발이 한창일 땐 3천 명이 상주했고, 매일 장이 서는 상설시장도 있었다"면서 "60~70년대 만해도 마을에 호텔도 있었고 우구치로 가는 길목엔 소위 '색시집'도 서너 개나 있어 밤이면 우구치마을(상금정,하금정)은 불야성을 이뤘다"고 회고했다.
임씨는 "전기도 근동에서 가장 빨리 들어왔고, 우구치재가 뚫리면서 대구를 왕복하는 직행 버스도 다닌 적도 있다"며 "금정광산이 가동될 때는 영주세무서가 봉화에 있을 정도로 경기가 좋아 3천가구에 7천여명이 북적거리며 번성했다"고 옛날을 아쉬워 했다.
이 마을은 1995년 경북도~강원도를 잇는 도로 확·포장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지역간 주민간 교류가 활발하다.
비록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지역 경계도 없고 마음의 경계는 더더욱 없다.
경계란 의미는 빛바래고 그저 한 마을로 살아갈 뿐이다.
하동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이경숙(38·여·영월군 하동면)씨는 "도 경계와 상관 없이 동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데 어울어져 살아가고 있다"며 "마을 체육대회, 집안 대소사 등에 동참하고 눈만 뜨면 휴게실에서 만나 온 종일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동네자랑을 늘어 놓았다.
경상도와 강원도 도계를 사이에 두고 넓은 벌판이 형성된 이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조제 휴게소와 조제분교는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다.
이 곳에는 매일 같이 경상도와 강원도에 주소를 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부침개도 구워 먹고 만두도 끓여 먹고 토종닭도 잡아 푸짐한 상을 차린다.
휴게소를 운영하는 김정희(53·여·영월군 하동면 내리)씨는"요즘 같은 농한기 때면 매일 같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먹음직스런 음식 상 차리고 한해 농사 이야기며 자식자랑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김씨 부부도 도계를 넘나드는 이색 삶을 살고 있다.
남편 임병도(59·춘양면 의양리)씨는 자녀 학업문제로 봉화에, 부인 김씨는 휴게소 운영으로 강원도에 주소를 둔 것. "얘들이 곧 대학가면 살림을 합칠 계획"이라는 임씨는 "행정구역은 나눠져 있지만 사람들 마음은 하나"라고 자랑했다.
휴게소와 마주하는 강원도 영월군 옥동초등학교 조제분교도 사정은 마찬가지.
1995년 경북 봉화군 서벽초등학교 금정분교가 폐교 되면서 경북 학생들이 강원도 옥동초교 조제분교로 다니고 있다.
말이 강원도 교육청 소속이지 전체학생 8명 가운데 7명(청강생 1명 포함)은 경북 봉화, 1명은 영월군에 산다
학생들은 영월 하동의 옥동초등학교에서 졸업장을 받고 중학교 진학은 경북 춘양면의 중학교로 진학한다.
유치원이 없는 산골마을이라 오갈데 없는 우구치 마을의 5살바기 박근형군도 조제분교 청강생. 근형이는 "형들이 하는 일은 나도 할수 있어요. 경상도, 강원도가 뭔지 몰라요"라며 생글생글 웃는다.
다만 낯선 사람들이 찾아 와 이것 저것 묻는 것이 신기한지 연신 따라 다닌다.
형들이 사진찍는데 은근히 꼽살이 끼여 본다.
이들 7명 중 5명은 또 사촌 사이. 대부분 4km 떨어진 우구치 마을에서 도계를 넘어 학교를 다닌다.
오전엔 학부모들이, 오후엔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등·하굣길을 오르 내린다.
주민들도 경상도, 강원도 할 것 없이 이 마을 학교의 팩스와 컴퓨터, 천막, 마이크, 운동기구를 사용하고 예방접종도 받는다.
교사 권석용(43·강원도 영월군)씨는 "고립된 지역이다 보니 문화적 혜택을 못 받아 상대적 빈곤감은 들지만 주민들간 상호협조가 잘되는 인심좋고 살기 좋은 동네"라면서 "한가족 처럼 꾸밈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임철진(37) 조제분교장은 "3년 전 처음 이 학교로 왔을때 학생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써 황당했다"며 "몇년째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경상도 사투리가 나온다"고 웃었다.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이들 도계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아무런 허물없이 살가운 정을 가꿔가고 있다.
봉화·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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