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배기 아이가 영양실조로 숨진 사실로 대구가 다시 전국적인 화제(?)의 도시가 됐다. 대구시민이란 사실이 또다시 부끄러워진다. 툭 하면 대형 사고가 터지는 도시에서 이젠 굶주려 죽는 사람이 나오는 도시라는 오명이 하나 더 덧씌워졌다.
국민 소득 1만2천 달러의 나라, 쌀이 남아돌아 창고에서 썩고 있는 나라에서 굶주려 죽는 사람이 나오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굶어 죽는 국민은 누구 말처럼 '기생충'이나, '기생층'이지 국민이 아니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에서만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 아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고 있는 자본주의 선진국, 미국에서도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
'보이지 않은 손'의 파산, 대공황(1929년) 당시 미국의 창고에는 식량과 옷, 석탄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린 채 얼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수백, 수천만 명이 여러 해 동안 그렇게 살거나 비참하게 죽어 갔다. 추위에 견디다 못한 아이들은 석탄을 훔치러 돌아다녔다. 영양실조에 걸린 가난뱅이들은 먹을 것을 훔치려다 붙잡혀 감옥으로 끌려갔다. 심지어 농장 경비원의 총에 맞아 죽는 일도 수없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캘리포니아의 농장주들은 오렌지 값이 밑바닥을 치자, 오렌지를 땅에 묻거나 석유를 뿌려서 태웠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시장 실패자' 내지 '시장 부적응자'에게 가혹하고 매몰차다. 한국도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를 도입하면서 '시장 실패자'를 양산하고 있다. 수백만 신용불량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영양실조로 숨진 네 살배기의 부모 역시 시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노동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국가는 이들을 외면했다. 그렇다면 이웃이 돌봐야 할텐데 이웃들도 이들이 굶는 지 몰랐다. 너도나도 제 애옥살이 삶에 급급해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시인 김지하는 "혼자 밥을 먹으면 밥맛이 없다"면서 그 이유는 바로 '독점'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래 밥상에 둘러앉아 나누어 먹어야 하는 밥을 혼자서 걸게 먹으려 하면 '밥의 본질'과 '먹는 형식'이 일치하지 않아 그 결과 밥맛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밥은 당연히 나누어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고 했다. 그러면 누가 해야 하나. 바로 이웃이다. 우리 조상들은 없는 살림에도 가진 것을 이웃끼리 서로 나눠먹었다. 이러한 따뜻한 이웃이 있을 때 그 사회는 건강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가 천당과 지옥을 식사시간에 방문했다고 한다. 차린 음식은 천당이나 지옥이나 똑같이 산해진미였다. 그런데 식탁은 넓고 젓가락은 필요 이상으로 길었다.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산해진미를 긴 젓가락 때문에 하나도 자기 입에다 넣지 못하고, 사방에 흘리고 떨어뜨리기만 했다. 그래서 하나도 먹지 못하고 굶주려 뼈와 가죽만 남았다. 반면 천당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입에다 음식을 넣으려고 기를 쓰지 않고 긴 젓가락으로 먹을 것을 집어서는 식탁 건너편에 앉은 사람의 입에 넣어 주었다. 서로 이렇게 함으로써 각자가 배불리 먹었고 심신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숨진 네 살배기(4년9개월)는 몸무게가 5kg에 불과했다. 신생아도 큰 아이는 몸무게가 4kg을 넘는다. 아이는 태어날 때와 비슷한 몸무게로 흙으로 돌아간 셈이다. 모두 제 입만 챙겼지 아이의 입을 채우는 젓가락은 아무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이 아이에게 국가와 지역사회가 아무 것도 해 준 게 없다는 얘기다.
여기서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귀다툼을 벌이며 제 배만 채우려는 세상이 바로 지옥이다. 숨진 네살배기에게도 이 세상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궁핍이나 강요된 가난은 사람을 상하게 하고 천하게 만들며,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간다. 천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자, 대구시민이다. 시장에서 쫓겨났다고 멸시와 냉대, 저주를 퍼붓는다면 아무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국민답게 하고 시민답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자, 책임이다.
조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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