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과 의학 사이-(2)의료분쟁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 50대 남자가 의자에 서서 유리액자를 벽에 걸다가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조각에 찔려 오른쪽 손바닥 두 곳에 2cm가량의 상처를 입었다.

인근 병원에서 전신마취를 하고 손바닥 힘줄과 신경을 잇는 수술(신경 및 건봉합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그는 화장실로 가서 담배를 피우고 나오다가 갑자기 두 발을 한 곳에 모은 뻣뻣한 자세로 얼굴을 바닥으로 향한 채 통나무 쓰러지듯이 쓰러졌다.

그때 제 6, 7번 목뼈가 부러지는 상해를 입었고 2년 뒤에 목 척수완전손상 등으로 사망했다.

가족들은 사고 경위로 보아 마취제가 과다투여되었으며, 병원이 이를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부 변조까지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의사과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2심 법원은 의사가 수술 후의 환자보호관리 의무를 게을리한 잘못이 있다고 해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고의 원인이 흡연으로 인한 허혈현상이라고 판단, 의사에게 화장실까지 따라가서 흡연을 금지시켜야 할 정도의 환자 보호관리 의무는 없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이 과정까지 5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소송의 결과 불의의 사고로 가장을 잃은 가족들이 보상이나 위로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병원과 의사 또한 환자 가족들로부터의 원망과 의료업에 대한 회의 외에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의료사고가 한 해 1만여 건이나 발생하고 이 가운데 소송으로 다루어지는 비율은 점차 높아 가고 있다.

최선의 진료에도 불구하고 일정률의 의료사고는 불가피하다.

그럴 경우 사고를 당한 환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의료행위의 공공성을 생각할 때 의사에 대하여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한 의료사고로 인한 법적 위협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에게 소신 있는 진료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처럼 의료사고의 당사자인 의사와 환자를 대립시켜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나 공적기관이 의료사고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의료분쟁조정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무관심으로 수년 째 서랍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한 번씩 소송으로 힘들어하던 환자 가족과 의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적정한 보상과 소신 있는 진료, 이를 위해 현재의 의료사고 분쟁해결제도는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것이다.

임규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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