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금(金)은 전부 수입품이다. 아기의 돌반지나 연인들의 커플링 등으로 해마다 12t 가량의 금을 사용하지만, 한반도에서 나는 금은 단 한 조각도 없다. 그런데 70여 년 전 이 '척박'한 땅에 황금 열풍이 불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1939년엔 조선에서 31t의 금을 생산하는 바람에 당시 일본을 세계에서 다섯 번째 산금국 대열에 올려놓았을 정도였으니까.
카이스트 전봉관 교수가 쓴 '황금광시대'는 오늘날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1930년대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골드러시를 다루고 있다.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라 불리던 그 시절, 삼천리 방방곡곡 바위가 있고 흙이 있는 곳이면 망치를 든 탐광꾼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양복쟁이, 상투쟁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코 박힌 사람이 두세명만 모이면 금광 이야기를 했다.' 책에 실린 당시 신문기사 내용은 이러한 황금 열풍이 근거 없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다.
김기진, 김유정, 이태준, 채만식, 조병옥.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잘 알려진 이들도 한때는 펜 대신 곡괭이를 들었다는 사실은 눈을 즐겁게 한다. 훗날 김유정이 남긴 소설 '금따는 콩밭'과 '노다지', 채만식의 '금의 정열'에 지은이들을 사로잡았던 그 열병의 자취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이다.
골드러시를 반영하듯 1930년대 한반도 전역에는 이름만으로도 황금광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노다지' 금광들이 빼곡히 산재해 있었다. 백만장자만 10여 명을 탄생시켜 '동방의 엘도라도'라 칭송됐던 운산금광을 비롯해 노름판을 전전하던 광부 최창학을 하루아침에 '황금귀 최창학' 신화를 쓰게 해준 조선 최대의 금맥 삼성금광, 그리고 변방의 오지 정주에서 언론인의 꿈을 키우던 촌부 방응모에게 조선일보를 안겨준 교동금광까지. 1934년 한 해에만 조선땅에서 개발된 금광이 5천972곳에 달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의 골드러시 풍경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 등장하는 1849년의 캘리포니아가 부럽지 않았다.
금값이 뛰니 금을 둘러싼 엽기적인 사건'사고도 많았다. 광부들은 광산에서 금이 함유된 광석을 훔쳐내기 위해, 밀수출꾼들은 금값이 비싼 만주로 금을 빼돌리기 위해 금을 숨기는 비법들이 백출했다. 책에 소개된 당시 금을 빼돌리는 7가지 비법과 각 비법의 장단점을 평가한 것에 자연스레 시선이 묶인다.
상투 속에 숨기기(가장 쉽지만 몸수색 통과 어려움), 신발 속에 숨기기(성공할 확률 거의 없음), 삼키기(죽기 십상), 입속에 감추기(몸수색 통과 어려움), 귓속에 묻기(빼돌릴 수 있는 양이 적음), 사타구니에 끼기(상당한 연습 필요), 항문에 숨기기(고통이 심함) 등 황당 그 자체다. 50대 여인이 금괴 3개를 항문에 숨기고 버티다가 결국 경찰서 유치장에서 금괴를 '출산'했다는 한 신문기사 내용에 이르면 헛웃음이 절로 난다.
책을 덮으면서 궁금증이 생긴다. 불과 70여 년 전 한반도 땅속에 묻혀 있었던 무진장 황금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책 말미에 저자는 "금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밝힌다.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면서. '1998년 서울 마포의 재개발 아파트 공사장에서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가 발견됐다. 광물분석 결과 아파트 공사장 일대 흙에는 1t당 14.5g의 막대한 금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매장량과 채산성 확인에만 1년 이상 걸리는 데다 금맥이 인근 단독주택지를 포함하고 있어 결국 아파트 공사가 강행됐다. 쌍용 마포 황금아파트 탄생의 숨은 얘기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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