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들은 맨발로 나가라는 겁니까."
지난 19일 오후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100여 채의 주택을 철거하는 이곳에서 만난 세탁소 주인 정모(59·여)씨는 울분에 차 있었다. 이주비용 합의를 못 봐 몇 주째 이사를 거부하고 있던 터에 집 주인이 전기, 수도를 끊은 데 이어 대문까지 떼어가 LP가스통까지 도둑맞았다는 것. 정씨는 "8년 전 이 가게를 얻으면서 권리금만 1천800만 원이 들었고 대형 세탁기계를 옮기는데도 큰 비용이 든다"며 "평당 300만 원 하던 땅값이 1천만∼2천만 원까지 올라 수억 원씩 번 사람들이 수둑룩한데 몇 푼 안 되는 이사비만 쥐여주고 나가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재건축 열풍 속에 세입자들의 한숨소리가 높다. 세든 상가나 집을 옮기려면 크고 작은 이사비용과 상가 권리금 등이 필요하지만 법적 보호대상이 아니다 보니 애만 태우고 있다.
이러한 지주와 세입자 간 다툼은 민영 재건축 현장마다 발생하고 있다. 특히 달구벌대로(수성교~만촌네거리) 구간에 주상복합·아파트재건축(31곳)이 쏟아진 수성구 경우 이주보상금 민원이 줄을 잇고 있다.
수성구 범어동의 철거예정인 건물 1층에서 약국을 하는 윤모(55)씨. 그가 세든 건물의 2, 3층 사무실은 벌써 이사를 나가 유리창도 없이 휑한 모습이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일대 150여 채의 주택, 건물이 철거된 텅 빈 동네에서 약국을 지키고 있다. "약국을 다른 곳에 개업하려면 권리금만 1억~2억 원이 듭니다. 아파트 시행사는 이주보상이 힘들다며 집을 비우든지 계약만료일인 내년까지 영업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는데, 사람도 없는 곳에서 무슨 장사가 되겠습니까."
도매 유통업을 하는 최모(40·중구)씨는 "지주가 시행사로부터 세입자 이사비용 명목으로 웃돈을 받아놓고도 감추는 경우도 있더라"며 "집 주인과 짜고 이주를 거부하는 일부 '나이롱 세입자' 때문에 우리까지 오해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재건축 시행업체들은 통상 포장이사비용 정도를 세입자에 책정하고 상가 세입자 경우는 위치, 업종, 수익성 등을 따져 집주인이나 시행사가 직접 별도의 협의를 하고 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건물 철거가 한창이지만 집주인과 이주비용 합의를 못본 세탁소가 그대로 남아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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