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자들의 생활 패턴을 살펴보니…

"부자도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옛말

◇ 하루 일과는

40대 후반의 부자 김모씨. 오전 10시쯤 느지막이 자신의 사무실(비제조업체)에 출근, 직원들이 일하는 걸 잠시 살펴보다 지인들과 점심 식사를 한다. 오후에는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근교로 바람을 쐬러 나가는 등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때가 많다. 밤에는 집 근처 바에 들러 맥주 1, 2병 마신 뒤 귀가한다.

점심식사는 1만5천 원짜리 한정식 아니면 5천 원짜리 찌개류를 메뉴로 고른다. 술을 좋아해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이들에게 한 달에 한두 번 고급 유흥주점에서 술을 사기도 한다. 힘드는 운동을 싫어해 골프를 즐기는데 토'일요일 라운딩을 빠트리지 않는다. 이전에도 재산이 많았던 그는 1999년 코스닥 열풍이 불 때 코스닥 종목에 투자, 투자금의 수십 배를 챙겼다. 그 돈으로 샀던 칠곡 땅이 크게 올라 재산이 더 불어났다. 정확한 재산 규모를 밝히지 않지만 통상 부자의 최저기준으로 삼는 10억~30억 원대 부자들보다는 더 큰 부자다.

김씨는 돈 많고 시간도 많은, 누구나 꿈꾸는 여유 있는 부자다. 그러나 그는 다른 부자들처럼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 부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쁜 의도로 접근하거나 기부, 투자를 권유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믿을만한 지인들하고만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 때문이다.

그는 "돈 많고 시간도 많은 데다 큰 걱정거리가 없기 때문에 사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돈 많은 부자라도 부자 나름대로의 고민 때문에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일반의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매월 꽤 많은 돈을 홀트아동복지회 등 사회복지단체에 남몰래 기부한다.

◇ 유형과 특성은

대구의 부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떠한 특성을 지녔을까? 금융업계에 따르면 대구의 부자들은 50대 이상의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이나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이 많다. 부를 물려받은 30, 40대와 IT업종에서 성공한 30, 40대 젊은 부자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가 노출되기를 꺼리며 부를 지키는 데 주력,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개혁을 내세우는 열린우리당보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한나라당을 선호한다. 특히 50대 이상의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이나 사업하다 은퇴한 이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대구의 부자들을 좀 더 세분화해 보자. 부자가 된 과정을 기준으로 자수성가형과 고소득 전문직형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자수성가형은 60, 70년대 이후 섬유업 등 사업에 뛰어들어 부를 일군 유형이다. 부를 일구는 과정에서 고생을 많이 했으며 부지런하고 근검절약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부동산 등에 투자, 부를 늘렸으며 요즘도 재테크 우선순위를 부동산에 두는 경우가 많다. 돈이 많은 데도 대체로 검소한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겉모습도 소박한 편이다. 힘들게 번 돈을 겉치장 등에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유형에는 자수성가는 아니더라도 소유한 토지 가격이 급등, 갑자기 부자가 된 이들도 포함될 수 있는데 자수성가형과 차이점은 부의 관리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의 관리에 뛰어난 부자들은 아내와 자식들조차도 정확한 부의 규모를 알지 못하게끔 관리할 정도라고 한다.

의사, 변호사, 신기술형 사업가 등 고소득 전문직형 부자들은 일에 매여 부를 즐길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하지만 부에 걸맞은 세련된 옷차림과 외모, 해외여행과 공연 관람 등 다양하게 부를 즐길 줄 아는 편. 부동산을 중시하지만 연령이 젊을수록 주식 직'간접 투자 등 금융자산을 중요하게 여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달서구 등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자수성가형 부자가 많고 수성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고소득전문직형 부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

여민동 대구은행 죽전VIP클럽 실장은 "대구은행 죽전VIP클럽에는 자수성가형 부자 고객들이, 범물VIP클럽에는 고소득전문직형 부자들이 많으며 본점VIP클럽에는 두 유형이 뒤섞여 있다"며 "최근 옛 제일모직과 명성웨딩 자리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북구지역에도 부자들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또 부의 규모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10억~30억 원대 부자, 50억~70억 원대 부자, 100억 원대 이상 부자 등으로 나뉠 수 있는데 부의 규모에 따라 생활방식도 서로 다르다. 큰 부자는 큰 부자끼리, 작은 부자는 작은 부자끼리 어울리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귀띔.

◇ 공통점은

부자의 유형별, 규모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면 이재에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고급 승용차를 몬다는 점이다.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땅에 투자를 해 큰 수익을 올리는 등 한 발 앞서서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고 부수적으로 운도 따르게 된다. 부자들은 또 거의 예외없이 에쿠스, 체어맨 등 대형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데 BMW, 벤츠 등 외제 고급 승용차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부자에 대한 선입견은 좋지 않은 편이다. 부동산 투기 등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부를 나눌 줄 모른다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부자들이 폐쇄적인 반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고 한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사회복지시설 등에 기부하는 부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정광주 미래에셋증권 범어동지점장은 "부자들 중에는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고 남을 돕는 데 인색하지 않은 이들이 많은데 드러내지 않고 하다 보니 사회적 선입견이 개선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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