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콩달콩 우리 부부 사는 법-이원섭·이정혜씨

"나를 위해 사는게 결국 남을 돕는 것"

2년 전 대구 법원 맞은편에 '바우만'이라는 스테이크 하우스를 열어 화제가 된 국립대 교수. 교수일보다는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며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다가 결국 정년을 10년 6개월 남겨두고 지난 2월 말 명예퇴직해 또 한번 화제가 된 교수. 바로 이원섭(55) 전 경북대 시각정보디자인과 교수가 장본인이다.

지난 3월 26일 결혼 25주년 기념일 날 그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소주 한 잔 하면 되지 않느냐"는 스승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 찡하게 제자들이 마련해 준 퇴임식. 영화 한 편을 상영하듯 제자들이 만든 영상 메시지는 그의 모든 것을 비춰 보여줬다. 치우다 만 어수선한 교수 연구실, 심근경색 약통…. 고민의 흔적들이 그대로 담겨 있는 영상 메시지를 보고 있던 학생들의 눈은 더 퉁퉁 부어 올랐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보장된 정년을 마다하고 국립대 교수를 박차고 나온 교수나 남편의 결정을 따라준 아내…. 기자의 궁금증은 결국 이들을 만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었다.

"학생들 영화감독해도 되겠어요. 어찌나 가슴 절절하게 영상 메시지를 잘 만들었는지…." 웃으며 지난 얘기를 하는 이씨와 아내 이정혜(53)씨. "무슨 별일이라고 인터뷰를 하느냐"며 겸손해 했지만 이 부부가 사는 모습은 뭔가 달라 보였다.

동료 교수들의 권유로 월요일 오후엔 경북대 명예교수로 대학원 1과목 수업을 하고 있는 이씨는 교수 일을 왜 그만 뒀느냐는 질문에 "공부가 더 하기 싫어서…"라고 했다. 학생의 입장도 아닌데 언뜻 이해가 안 되었다.

"학생을 잘 가르치려면 공부를 계속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학교생활도 재미있지만 이제 더 공부하기도 싫고 만 65세 정년에 나오면 새로 무슨 일을 하기가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음식 만드는 건 평생 해야 할 일이니까요."

무덤덤한 그의 말에 아내 이씨의 설명은 뭔가 더 절박한 느낌이 들게 했다."10년 전 심장이 안 좋아 죽을 고비를 넘겼던 남편이 지난 1월 병이 재발해 두 번째 고비를 넘겼어요. 아마 스트레스가 많았나 봐요. 식당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이 스스로 양심의 가책이 많이 됐나 봐요."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 이씨.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는 길"이라고 말하는 그녀 역시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대구 신광교회 전도사로, 오는 5월 목사 고시를 앞두고 있는 그녀는 새벽 5시 새벽기도에 한 번도 빠지는 법이 없고 오전 9시 30분 교회로 나와 오후 6시 귀가할 때까지 발로 뛰어다니며 전도활동에 열심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제가 전도사가 될 줄은 몰랐어요." 목사가 될 남편 후보들을 마다한 것도 자신이 없어서였는데 결혼 후 아이들을 키워놓고 뒤늦게 신학 공부를 해온 그녀. 올해 목사 고시에 합격하면 내년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되는 그녀는 "남편도 애들도 내 욕심대로 만들려고 했었는데 50%만 채울 수 있으면 만족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결혼하기 전 미술학원과 초등학생 과외교사를 했던 그녀는 기민(25), 지연(24) 남매의 과외교사를 자처하며 마음의 부담을 많이 줬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욕심이 지나쳤음을 느끼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게 됐다는 그녀는 아동 신앙교육을 담당하면서 "자랄 때 설치고 극성맞은 아이가 커서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자신있게 할 정도로 아이들 보는 눈도 달라졌다.

아침형 인간인 아내와 달리 저녁형 인간이어서 아내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할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이씨. 교회일로 바쁜 아내를 위해 주일에는 한 주간 먹을 밑반찬을 직접 만드는 그는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서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은 돈이 아니라 독립심과 자립심이라는 생각하는 그는 수험생인 고3 아들을 학교 앞에서 혼자 하숙하도록 해 일찍부터 독립시켰다.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고 베풀다 보니 늘 주머니에 돈이 없는 부모를 둔 덕에 아이들은 "아빠, 엄마를 믿으면 안돼"하며 용돈, 학비 등을 직접 벌어 쓰고 있단다.

막상 식당을 운영해 보니 생각하던 부분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씨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예쁜 집을 짓고 방 4, 5개를 잘 꾸며 민박을 하면서 자그마한 식당을 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1년에 10개월은 돈을 벌고 나머지 2개월은 여행을 하며 살고 싶다는 이씨. 한 집에 차 두 대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시동 걸 때마다 소리가 나는 중고차를 한 대만 모는 이들 부부는 남의 이목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스스로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 부부가 서로 배려하며 원하는 일을 하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인 것 같다고 말하는 이원섭·이정혜씨 부부.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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