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동재산이 샌다, 아파트 위탁관리-(2)관리는 뒷전 돈만 챙긴다

업체는 잇속만 신경…책임은 몽땅 주민에 미룬다

아파트 위탁관리가 도입 20년이 지났지만 대구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몇 몇 업체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껍데기만 '위탁관리'를 할 뿐 사실상 '자치관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잘하는 업체까지 매도당하는 실정이다. 이들 업체는 위탁관리 중 문제가 생겨 주민들이 교체를 추진해도 갖은 방법을 동원하며 버텨 오히려 주민 위에 군림하는 형국이다.

◇내막 1-'한 번 관리는 영원한 관리(?)'

위탁관리는 아파트 첫 입주 시기에 시공사가 관리업체를 선정하면서 시작된다. 이 때 위탁관리를 따야 수년간 회사가 마음 먹은대로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업체마다 서로 위탁관리를 따내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이 과정에서 비리, 결탁 따위의 무리수가 생겨나고 있다.

대구는 서울·수도권 등 경쟁 입찰이 주류를 이루는 지역과는 달리 수의계약이 대다수다. 최근에야 민간 아파트를 중심으로 경쟁 입찰이 늘고 있을 뿐이다. 수의계약도 공정하면 문제가 없지만 대구는 첫 단추부터 불공정게임을 하는 곳이 적잖다.

대구도시개발공사는 자체 선정 기준을 통해 배점이 높은 업체를 상대로 수의계약을 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자체 선정 기준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정 기준은 자본금, 설립년도, 위탁관리 능력(직원 수), 위탁관리 가구 수 등이 주 항목이며 '많고 오래될수록' 높은 배점을 주고 있다.신기락 아파트사랑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기준에 적합하면서 높은 배점을 받을 수 있는 업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다 업체의 재무 구조, 행정처분 등 도덕성, 관리비 절감 등 더 중요한 기준은 없어 다른 업체는 들러리"라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도개공은 지난 5년간 분양한 성서 용산파크(802가구), 장기 누리타운(356가구), 선수촌 1단지(775가구) 등의 5개 단지 중 4개를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업체에 관리를 맡겼다.이에 대해 도개공 관계자는 "기준에 따라 관리업체를 선정했지만 업계 추세에 따라 향후 분양하는 아파트에 대해선 공개입찰을 할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위탁업체를 선정한 동구의 한 아파트도 사정은 엇비슷하다.참가 자격은 대구의 주택관리업 등록업체, 자본금 5억원 이상, 주택관리업 등록 3년 이상 업체, 공고일 현재 10개 단지 또는 1만 가구 이상 관리업체, 시설물유지관리업체 등이지만 이를 충족한 업체는 전체 15개 중 3, 4개에 불과하다. 실제 최종 입찰 업체는 4개에 그쳤고, 이중 2개 업체는 사실상 한 회사였다.

선정 평가 기준 역시 의문 투성이다. 기준은 설립년도, 자본금, 부채비율, 유동비율, 부가세 납세 실적, 관리단지 실적, 기술인력 보유 현황, 장비 및 A/S 차량 보유 현황, 하자처리 실적, 위탁관리수수료, 단지 관리계획의 적정성, 위탁관리업체의 신뢰도 등 12개.

4개 업체 중 최고 점수를 받은 업체는 대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업체로 총 48점이며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항목도 설립년도, 자본금, 관리실적, 기술인력 보유 현황, 장비 및 A/S 차량 보유 현황, 하자처리 실적 5개다.이같은 기준은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을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설립년도, 자본금 등의 회사 규모는 아파트 관리 전문성과는 별 관계가 없고, 장비 및 A/S 차량 보유 현황 또한 아파트 공사는 모두 외주 처리하기 때문에 위탁관리업체에 의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또 평가표의 하자처리실적에는 하자소송 실적이 포함됐지만 최고 점수를 받은 업체 경우 과거 승소 댓가로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전 사장이 검찰에 구속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파트 주민에게 가장 중요한 위탁관리 수수료, 단지 관리 계획 적정성, 업체 신뢰도 3개 항목도 입찰 업체에 똑같은 점수를 배정한 것.

위탁수수료 경우 서울, 수도권, 부산 등의 수수료는 평균 23원에 불과하지만 평가표는 '덤핑 방지를 위해 25원 이하는 최저 점수처리한다'는 규정을 넣었다. 인건비 등 관리비 절감과 관련한 단지 관리계획 적정성은 주민들에게 세부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은 것.

또 위탁관리업체로 선정된 업체는 과거 다섯 차례나 행정처분을 받은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신뢰도 항목 역시 의문으로 남아 있다.이 아파트는 위탁관리업체 재선정을 놓고, 업체와 주민, 주민끼리 갈등을 빚고 있다.

◇내막 2-겉은 '위탁', 속은 '자치'

건교부의 아파트 표준관리 규약 준칙 등에 따르면 위탁업체는 각종 공사, 용역, 관리비 산정 등 모든 행위에 대해 관리 주체로서 업무를 해야 하고, 각종 책임도 져야 한다고 했다.또 소장, 기사 등 관리 직원의 임금, 4대 보험(연금, 산재, 고용, 건강) 등의 인사.노무관리도 업체가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고, 노무.인사 관련 문제 발생시 그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

서울.수도권의 경우 상당수 업체들이 관리주체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져 주민 신뢰를 쌓는 반면 대구는 그렇지 않은 업체들이 더 많다.실제 취재팀이 대구 한 업체의 위탁관리 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각종 공사 및 용역 계약, 관리비 통장 등에서 발생하는 경리.회계 관련 업무 경우 입주자대표회의는 의결기구로만 활동하면 되지만 사실상 직접 결재 형태를 취하도록 했다. 자칫 사고 발생 시 입주자대표회의가 민.형사상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

관리사무소장도 현장 관리 지위만 수행하면 되지만 위탁업체의 직원이기도 해 업체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 업체는 관리사무소장 책임 아래 모든 아파트 관리를 하도록 만들어 놨다. 또 직원도 계약서 상 소속이 입주자대표회의로 돼 있어 고소 등 문제 발생 시 사용자책임원칙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결국 이들 업체는 뒷전에 가만히 앉아 위탁 수수료와 공사 및 용역 계약 시 발생하는 이익만 챙기고 있는 셈이다.전문가들과 업계에 따르면 대구 경우 500가구 이상 대형 단지 기준 연간 위탁 수수료가 천만원이 넘고, 각종 공사와 용역 계약을 통해 보는 수입도 많게는 억대에 이른다는 것.

계약서 상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계약업체가 당사자이지만 실제 계약 업무는 위탁업체가 사실상 도맡아 적잖은 리베이트를 챙기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국세청은 위탁관리 업무 관련 과세, 비과세 논란을 끝내기 위해 2001년 7월부터 위탁업체에게 직원 임금 및 4대 보험 등 관리비 총액을 회사 매출로 잡아 성실 신고 후 세금을 내도록 했다.

서울.수도권의 상당수 업체는 국세청의 조치를 따르고 있지만 대구 경우 몇 개 업체를 제외하고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이들 업체는 직원 경우 주민들이 월급과 4대 보험을 주고, 계약도 주민이 하기 때문에 회사 매출로 잡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대구시내 한 성실 신고 업체와 이 업체보다 위탁관리 아파트 수가 5배나 큰 업체의 2002년도의 매출 내역을 분석한 결과 '성실 업체'는 매출액이 44억 8천만원인 반면 '5배 업체'는 26억 3천여만원에 불과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또 부과세(2003년 상반기)도 '성실 업체'는 매출 중 면세 대상인 인건비를 제하고도 5천100여만원을 납부한 반면 '5배 업체'는 7천900여만원을 냈다.

◇내막 3-'어떻게 잡은 안방인데'

"돈 되는데 쉽게 비켜줄 리 있겠어."

북구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아파트는 지난달 22일 이후 관리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 위탁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기존 업체(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업체)가 관리업무 인계 인수를 거부하고 있어서다. 주민들은 연간 위탁수수료 95만원, 관리사무소 인건비 1천800만원 등 관리업체를 변경하면 더 많은 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

또 기존 업체 경우 과징금,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으로 신뢰도에 문제가 있는데다 관리 직원을 입주자대표회의 소속으로 해 놓아 각종 노무.인사문제가 발생하면 주민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주민 62%가 업체 변경에 동의하고, 위탁관리를 준 시공사(도개공)와도 인수 인계 계약을 마쳤지만 기존 업체는 주민 일부의 일방적 결정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내고 관리사무소를 차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기존 업체는 입주 전에 시공사가 일방적으로 선정했다"며 "주인인 주민이 관리업체를 교체하겠다는데 못나가겠다고 버티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분개했다.2002년 수성구 지산동, 2003년 북구 서변동, 올 초 시지 등지의 3개 아파트 주민들도 각종 문제로 위탁업체를 바꾸려고 하자 업체들이 막무가내 버티기로 일관한 바 있다.

아파트 전문가들은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 주민들이 위탁업체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공개경쟁을 통해 별 마찰없이 위탁관리를 바꾸고 있지만 대구는 적잖은 업체들이 주민들의 교체 요구가 있어도 주민과의 힘겨루기, 입주자 대표 회의 장악 등을 통해 '장수'하고 있다" 지적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 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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