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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Travel라이프 유럽 배낭여행-(15)호흡하는 신화-산토리니

아테네에서 배로 8시간 가량을 가면 신비한 섬 산토리니가 나타난다. 바다 위에 솟아있는 거대한 화산 절벽에 성냥갑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모양새가 어찌나 기이한지 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의 셔텨를 눌러댄다.

화산터라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이곳은 당연히 그늘을 찾기가 힘들다. 남국의 따가운 햇살을 오롯이 온몸으로 쬐고 있자면 그늘에서 맞는 한국의 찜통더위가 오히려 그리울 정도다. 하지만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흰색벽에 파란지붕을 얹어놓아 눈으로 느끼는 청량감은 그만이다.

저녁노을로 유명한 이아로 발길을 옮겼다. 이아는 초승달 모양의 산토리니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는데 절벽 끄트머리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기 위해 저녁이면 수많은 연인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붉게 물든 노을이 만들어내는 로맨틱한 분위기는 에로스의 화살에 꽂힌 연인들의 가슴을 한층 더 찡하게 할 것 같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보고 있자니 신화속 신들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최대의 화두는 역시 '사랑'이다. 그렇다면 초월적 존재인 신들에게 있어 사랑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까.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극적인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사랑의 메신저 에로스다. 어깨에 화살통을 메고 다니고 숱한 남녀의 가슴을 애타게 만들었던 날개 단 귀여운 악동 에로스! 에로스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기도 하다.

멋진 청년으로 성장한 에로스는 자유연애주의자(?) 아프로디테와는 달리 인간 프시케('마음'이라는 뜻)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다. 에로스는 영생불사의 신(神)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죽어야하는 인간 프시케를 사랑하게 되지만 프시케가 품은 의심 때문에 절망하고 결국은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된다. 에로스를 잃고 나서야 그의 사랑을 깨닫게 된 인간 프시케는 에로스를 다시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하데스의 왕국 저승에 까지 이르게 된다. 인간으로서 저승을 흐르는 스틱스 강을 건너게 됐으니 결국 죽음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죽음까지 불사하는 그녀의 이런 노력에 에로스는 다시 맘을 돌리게 되고 신들의 왕 제우스는 프시케에게 신들의 술 넥타르를 권함으로서 프시케를 영원불멸 신의 반열에 올려준다. 이로써 올림푸스를 들썩거리게 만든 신과 인간의 사랑은 해피엔딩을 맞게 되었다.

신들의 사랑이 이처럼 모두 행복한 결말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의 사랑은 굉장히 저돌적이고 때로는 너무나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에로스처럼 인간 세멜레를 사랑한 제우스는 인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신의 광채를 선보이다 결국 세멜레를 죽임에 이르게 하고 다프네에 대한 무모한 사랑을 품었던 아폴론은 결국 그녀를 월계수 나무로 변하게 만든다.

신화에서 보여주는 신들의 거침없는 사랑을 인간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순도 100퍼센트의 사랑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사랑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강건해(방송 작가)

사진: 산토리니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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