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고는 달리 배를 채울 게 없던 시절,어른들에 비해 작은 밥그릇을 받아야 했던 어린 아이들에게 큰 밥그릇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큰 밥그릇 주인은 당연히 가장(家長)이었다.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밥그릇 크기는 바로 가장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했다. 온갖 궂은 일을 몸으로 때워야 했던 머슴의 밥그릇은 노동의 양이 많았던 때문에 컸다. 귀한 자식이라고 아이에게 큰 밥그릇을 안겨 주고서는 집안 질서가 지켜지지 않았다.
○…밥그릇 싸움이란 바로 사활이 걸린 경쟁을 뜻한다. 밥그릇을 뺏긴다는 말은 곧바로 먹고 사는 터전을 빼앗긴다는 말이다. 그런 밥그릇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의사와 한의사, 검찰과 경찰, 노동자와 사용주를 비롯해 끼리끼리 경쟁하는 다양한 삶의 주체들이 모두 그럴싸한 명분을 내놓지만 누구나 밥그릇 싸움으로 이해한다.
○…4년제인 약대 학제를 6년제로 개편하기 위한 공청회가 의사들의 실력저지로 무산됐다. 의사들이 공청회 단상을 점거하고 출입문 봉쇄로 공청회를 막자 약사들은 "남의 학문에서 공부를 더 하겠다는데 왠 방해냐"며 흥분했다. 4년제로는 유능한 인력을 양성하기에 미흡하다며 처방전 검토와 약 복용 지도를 위해 특수전문인 양성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년 기초 교양 교육, 3년 전문지식 교육과 1년의 실무실습으로 구성된 '예과 2년 본과 4년의 2+4년제'를 바람직한 학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약대 학제 개편이 의사들의 진료 행위를 침범할 수 있다며 극력 반대한다. 학제 개편이 결국 조제료를 인상, 국민 의료비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명분도 내세운다. 약사들의 주장처럼 6년이 아니라 세계적 추세도 4년이라고 한다. 일반 자연계열 쪽도 2+4년제에 반대다. 약대로 빠져 나가려는 학생들의 연쇄 이동으로 학사 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이유다.
○…의사든 약사든 방법만 다를 뿐 같은 직업인이기에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마음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국민 건강을 담보로 한 그들의 직업에는 밥 그릇보다 중요한 책임이 걸려 있다. 의사나 약사 모두 여러 직업군 중에서 상대적인 강자로 대접받는 이유도 그런 책임 때문이다. 약의 통제권을 누가 가지느냐에 앞서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와 약사는 많지 않은 것일까.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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