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달성 현풍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1970년대 초는 '잘 살아보자'는 구호와 함께 새마을 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던 때다.

새마을 운동은 처음에는 농촌 가꾸기 및 농가 소득증대 사업으로 시작됐다가 점차 도시·직장·공장 등으로 확산되면서 국민의식개혁 운동으로 발전했다.

사진은 현풍면을 가로 지르는 현풍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주민들이 제방 쌓기에 한창이다.

농한기에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실시된 소득 가꾸기 사업장 모습이다.

노임으로 밀가루 등 양곡이 지급됐다.

당시에는 현풍면 인구가 1만2천555명(1971년말)으로 지금(5월말 현재 1만2천341명)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달성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기 전이며 전형적인 우리나라 농촌모습을 하고 있다.

주민 김석봉(60·현풍면)씨는 "주변에서 현풍은 규모가 큰 도시였지만 초가집에 대부분 비포장 도로였다.

새마을 운동의 시작으로 지붕개량에 마을 안길이 넓혀졌고 정부가 무상으로 공급된 시멘트로 도로를 포장하고 다리를 놓았다"며 말했다.

황영근 달성군 공보담당(49)은 "당시에는 산이 헐 벗고 비만 오면 물난리가 났다"며 "가을걷이가 끝나고 농한기를 맞아 소득증대 사업의 하나로 여름철 태풍·홍수 등으로 되메워진 하천에서 모래, 자갈 등을 들어내고 제방을 보수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황 담당은 "그 때는 길을 넓히기 위해 주민들이 토지를 무상으로 기부했지만 지금은 보상가가 낮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등 사업 추진에 애로가 많아졌고 급격한 도시·산업화로 인심도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지금 현풍천은 2003년 태풍 '매미'의 내습으로 인한 침수피해를 입은 뒤 깨끗하게 정비됐다.

또 현풍·유가면 주변 270만평에는 대구 테크노폴리스가 조성될 계획으로 향후 국토 동남권 R&D기지로 발전을 준비하고 있다.

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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