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빨간 조끼

어느 틈에 빨강은 우리 사회에서 눈에 익은 색깔이 됐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붉은 악마의 '꿈은 이루어 진다'는 외침은 빨강을 자유와 희망의 색으로 자리잡게 했다. 빨간 조끼를 입은 노동자의 대열은 빨강을 민주화와 평등의 상징으로 알게 했다. 대신 '쳐 부수고 무찔러야 할 적'이란 상징은 사라졌다. 사랑과 분노, 성령과 사탄, 노동자와 귀족을 함께 상징하는 빨강의 사회적 지위가 음지에서 양지로 바뀐 셈이다.

◇ 녹색도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색깔로 자리잡았다. 자연과 순수를 상징하는 색답게 누구에게나 환경을 연상케 한다. 이미 서구에선 녹색당까지 등장했고 우리 환경단체도 녹색으로 대표된다. 새 봄을 고대하는 이미지의 값을 제대로 하는 셈이다. 최근 몇 년간 상표에 색깔과 색깔 이름이 들어간 상표 출원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초록색이 전체의 35% 이상을 차지한 것도 환경 친화의 이미지 때문이다.

◇ 현대차 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채용 비리와 노조 혁신에 관한 의식조사'에서 노조원들은 노동운동과 투쟁역사를 대변해 온 빨간 조끼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 집행 간부와 대의원이 입는 빨간 조끼가 순기능을 잃고 권력화의 상징이 돼 이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에 조사 대상 73%가 찬성했다고 한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일부 대의원이 빨간 조끼를 입고 조합 업무를 핑계삼아 근무 시간을 이탈하고 상급자를 경시하는 등 지휘 통제를 약화시켜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 서로의 운동 노선에 대해 비판을 해 왔던 노동운동(赤)과 환경운동(綠) 진영이 재생 에너지 확대를 통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 구축을 위한 '적록동맹'을 맺었다는 소식도 있다. 민주노총 소속의 에너지 부문 주요 노조와 환경단체가 22일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위크'를 창립했다. 지금껏 노동계는 환경진영이 환경문제에 내재된 계급적 불평등 문제를 외면, 중산층 중심의 체제유지에 기여한다고 비판해 왔다. 환경진영도 노동계가 부의 재분배에만 열중, 개발주의의 문제점을 무시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해 왔다.

◇ 원색은 강렬하다. 강한 만큼 순수함이 크고 거부감도 크다. 그래서 옷도 원색은 큰 용기 없이는 입기 어렵다. 몇몇을 섞은 색깔이 쉽게 다가 온다. 순수함보다 조화가 편하기 때문이다.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적록동맹이 서로의 장점과 다양성 인정의 계기가 되기를….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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