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報恩

김태정 전 검찰총장은 97년 대선(大選)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터진 'DJ 비자금'사건의 수사를 선거 후로 미뤄 버렸다. 만약 이때 이 사건이 검찰수사로 왈가왈부(曰可曰否)했더라면 DJ가 대통령이 됐을지도 의문이고, 그 뒤를 이은 현 '참여정부'의 태생도 불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다. 김태정씨는 나중에 "만약 검찰이 그 사건에 손을 댔더라면 호남에 민란(民亂)이 일어나 나라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DJ가 집권한 직후 난데없는 '옷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그 의혹의 중심에 검찰 총장에서 법무장관으로 발탁된 김태정씨의 부인이 서 있었다. 온 나라는 그 당시 이른바 실세 장관들 부인들의 호화로운 의상문화 뉴스로 시끄러웠고 '국민의 정부'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내면서 첫 시련에 부닥쳤다. 그러나 당시 DJ는 언론을 겨냥, 마녀사냥식으로 몰고가서는 안 된다고 질책, 김 장관의 사임을 거부했다. 언론과 야당이 총공세에 나서면서 '옷로비의 실체'와 정권 차원의 부도덕성이 부각되자 DJ도 굴복하고 말았다.

◇문제는 이게 불행하게도 DJ 정부의 부도덕성이 드러나는 서곡이었다는 점이다. DJ도 회고에서 밝혔듯이 "비자금수사 유보 결정을 한 김태정씨를 양식 있는 사람으로 봤다"고 했다. 결국 '비자금 수사 유보'에 대한 보은(報恩)이 집권내내 걸림돌로 작용했다. 각료 발탁에 대통령의 사감(私感)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참여 정부의 최근 장관이나 공기업 인사 등에서 지난 총선이나 재'보선에서 낙선한 인사들을 줄줄이 기용하고 있다. 이러다간 '낙선 내각''공기업은 낙선자 위로처'라는 혹평이 나올 판국이다. 태평성대에도 이런식의 인사는 그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지금 국정은 그야말로 난마처럼 꼬여 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의당 물러날줄 았았던 윤광웅 국방장관을 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경질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참다 못한 야당의 해임건의안까지 나온 마당이다. 그만큼 유능한 건지, 오기인지, 보은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지금 나라 모양이 장관 한자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할 처지인지 그것조차 모른단 말인가.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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