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일은 미국이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미국의 핵 사용 덕분에 해방을 맞이했다는 빗나간 인식 때문인지, 일본의 피폭 경험은 우리에게 낯선 문제였다. 이 와중에 약 7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 피폭자들의 고통은 철저하게 외면당해왔다. 이들 가운데 4만 명은 해방된 조국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3만 명도 한국과 일본 모두로부터 외면당해야 했으며, 90%는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우리에게 핵무기는 철저하게'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5년 후, 이번에는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가 핵전쟁에 휩싸일 뻔했다. 북한의 남침 직후 개입을 결정한 미국이 조기 종전을 위해 핵 사용을 검토한 것이다. 특히 맥아더는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된 직후인 7월부터 핵 사용을 요구했고, 30여 발의 핵폭탄을 투하하면 10일 안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는 "(30여 발의 핵폭탄 투하로) 동해안부터 서해안까지 코발트 방사선으로 막을 형성할 것이다. 그 지역의 생명체는 60~120년 후에야 다시 소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준'은인의 나라'와 무조건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절멸의 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는'전쟁머신'으로서의 미국을 함께 바라봐야 할 근거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미국은 재래식 공격에도 핵무기로 보복한다는'대량보복전략'에 따라 1950년대 후반부터 남한에 다양한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고, 한 때 그 수는 1천 개에 달했다. 그리고 1978년부터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통해 실전 능력을 키웠다. 그러나 미국이 남한에 배치한 핵무기는 1991년 말에 모두 철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은'옛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군사패권주의를 추구해온 부시 행정부는 중국'러시아 등 핵보유국은 물론이고 북한 등 5개의 비핵국가에 대해서도"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정책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을 뒷받침하듯 부시 행정부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북한 등 적대국가의 지하요새를 겨냥한 소형 핵탄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유사시 한반도 핵전쟁의 가능성을 높여온 핵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한반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하고 있는 남아시아 및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중동과 함께 핵전쟁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핵무기를 패권주의 강화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핵 카드를 생존 수단으로 삼고 있는 북한 사이의 충돌이'한반도 핵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핵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수준은 한심하기까지 하다. 비록 일부지만,'반핵'을 외치며 김정일의 모형물을 불태우는 반북친미세력은 미국을 찬양하는데 급급하다. 마찬가지로 반미를 외치는 일부 세력들은 북한의 핵무장이 전쟁을 막고 있다는 북한의 논리를 답습한다. 또한 혹자들은"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통일코리아의 것이 된다"는 황당한 논리까지 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과반수를 넘나들고 있다. 각자 다른 얼굴을 하면서'핵무기주의'에 포로가 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가 풀리면 우리는 핵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일까? 재래식 공격에 대해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미국 핵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1년 이내에 수백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과 핵물질을 보유한 일본 핵문제는 어떤가? 3대 핵 강대국과 잠재적 핵 강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딜레마는 어떻게 풀 것인가? 우리 사회에 꿈틀거리고 있는 핵무장의 유혹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핵무기주의'로부터 벗어나'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로부터 찾을 수 있다. 이른바'제2의 북핵 위기'는 우리가 핵문제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정당한 요구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는 국제사회에, '비핵화된 한반도'는 어떻게 핵보유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반도의 특수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를 핵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지난 60년간 핵 위협에 노출되어온 우리 사회가 가꿔나가야 할 소중한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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