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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태연씨 손녀 현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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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서훈 추서는 뜻밖"

"사회주의 운동을 하신 할아버지에 대한 독립유공 서훈추서는 통일이 되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항일투쟁에 앞장선 사회주의 운동가 김태연(이명 김단야·1900~1938) 선생의 독립유공 신청를 위해 지난 1993년부터 노력해 온 손녀 김현숙(54·구미시 형곡동)씨는 할아버지에게 독립유공자 서훈 (건국훈장 독립장)이 내려진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태연 선생은 남매를 두었으나 아들(진섭)은 1960년, 며느리도 이듬해에 사망하면서 할머니(윤재분, 1974년 사망)가 현숙씨 등 손녀 3명을 키워 왔었다.

현숙씨는 "할아버지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박헌영 선생의 아들(경기도 모 사찰의 주지)이 축하인사를 건네오는 등 많은 지인들이 격려 전화를 해 왔다"며 "그 동안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경북대 전현수 교수(사회학과)가 옛 소련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해 주어서 큰 도움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태연 선생은 1915년 대구 계성학교 입학뒤 다음해 일제의 조선지배를 정당화하는 미국인 교장을 비판하며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당하고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6개월만에 귀국, 서울 배재학교에 들어가 학생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었다. 이후 3.1운동 때 고향인 개령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그러나 국내 독립운동에 한계를 느낀 김 선생은 1919년 12월 상해로 망명했다.

김 선생은 임시정부 요인인 여운형, 김규식 등과 교류하고 박헌영 등과 사회주의 사상에 몰입한다. 이후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지도자인 여운형 등은 박헌영, 김태연 등을 국내에 파견시키는데 귀국 도중 1922년 3월 신의주에서 잡혀 투옥됐다. 1924년 1월 출옥한 선생은 박헌영, 임원근과 함께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청년운동에 참여했다. 1928년 12월 조선공산당의 활동이 불법화돼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당 재건운동을 전개하다 1937년 옛 소련 경찰에 체포돼 1938년 사형을 당했다.

구미·박종국기자 ?jkpark@imaeil.com?

사진: 손녀와 그의 남편 신한우(57)씨가 그동안 수집한 할아버지의 각종자료를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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