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재직하는 대학 캠퍼스 이곳저곳에는 대학의 이념을 보여주는 상징들이 숨어 있다. 그중 하나가 본관 벽면, 다른 사립대학이라면 아마도 설립자의 초상화가 있을 법한 자리에는 이른바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것이 걸려 있다.
커다란 텅 빈 캔버스. 방문객들은 캔버스 아래에 붙은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라는 설명을 읽어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이 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위대한 화가가 나타나서 그 정체성을 형상화 할 때까지 비워 두는 캔버스.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다가 자신이 스스로 그런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비워 둔 캔버스는 그냥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화에서 여백, 특히 강이나 호수가 하늘과 만나는 지점은 단지 비워두기만 함으로써 물과 공기의 넘나듬이 충분히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타불라 라사'에는 그 대학의 과거와 오늘, 미래의 모든 이미지들이 나타나고 포개지고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막스 빌이 엮은 '칸딘스키: 예술과 느낌'(1963)에서 칸딘스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점, 선, 색채들은 정해진 목소리를 내지만 텅 빈 캔버스는 수천 개의 나지막한 목소리들을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늘의 별들이 서로 간의 거리에 상응하는 주파수의 소리를 내고, 그 소리들이 합쳐져 웅장한 음악을 연주한다는 천재 피타고라스를 이은 발상이다. 이미지가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굳이 현란해야 할 필요가 없다.
영화가 대박을 치기 위해서 반드시 '이미지의 폭력'을 구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단지 매체일 뿐,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가의 문제는 오롯이 관객인 우리의 몫이다.
이미지의 시대이지만 이미지를 꼭 눈으로 보려고만 하지 말자. 이미지가 우리에게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전해 오는 말은 누가 하는 말인가? 이미지는 결국 나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내 말의 메아리이다. '본다'라는 화두를 이쯤에서 접는다.
박일우 계명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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