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쌀 비준안'통과-향후 전망과 대책

수입산 시판돼도 쌀값 급격한 하락은 없을 듯

수입쌀이 시중에 풀리면 국내산 쌀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또 의무수입물량 증가는 1인당 쌀 소비량 감소와 더불어 재고량을 늘려 쌀값 하락 등의 요인이 된다. 소비자들에게 수입쌀 시판은 다소나마 가계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겠지만 농민들에게는 심리적 충격과 함께 소득 감소 등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수입쌀 우리 식탁에 오른다

내년 3월쯤 시중에 풀리게 될 밥쌀용 물량은 올해분 수입량 15만6천645섬(2만2천557t)으로 우리나라 연간 쌀 예상소비량인 3천200만 섬의 0.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늘어 3만4천429t이 수입돼 결국 내년 한 해만 5만6천986t이 수입되기 때문에 국내산과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헤이룽장(黑龍江)성과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 등 동북 3성에서 생산되고 있는 자포니카 계열의 쌀이 국내에 선보이고 미국은 국내에도 고품질 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캘리포니아산 칼로스쌀로 국내 소비자들을 공략할 전망이다. 또 소량이지만 국가별 쿼터를 배정받은 인디카 계열의 태국산 안남미, 인도·파키스탄의 향기나는 고품질 쌀(향미)인 '바스마티(Basmati)'도 국제경쟁입찰 과정을 통과하면 국내 유통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쌀 전문가들은 우리 국민이 무작정 수입쌀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국내 시장에 풀리는 식용쌀은 백미로 수입될 가능성이 높고, 가공용은 현재와 같은 현미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 데 따른 것이다.

김주수(53) 전 농림부 차관 등 "수입쌀은 현지에서 도정한 뒤 국내 소비자 시판까지 적어도 20∼60일 이상 걸리기 때문에 밥맛이 국내산보다 크게 떨어진다"며 "국내 소비자들이 쉽게 수입쌀을 선호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쌀 시장 개방으로 쌀값은 어떻게 변할까

산지 농민들은 재고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수입쌀마저 시중에 풀리면 소폭이지만 쌀값 하락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쌀이 밥쌀용으로 시판되면 1만t이 풀릴 때마다 국내산 쌀 가격은 1㎏당 10원씩 내려 내년에는 80㎏짜리 쌀값이 2천 원가량 떨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쌀 전문가들은 앞으로 쌀값이 다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는 현재 전국적으로 산지에서 벼값(조곡 40kg 기준)이 지난달부터 포대당 500∼1천 원 정도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는 데다 미곡종합처리장(RPC)을 보유하지 않은 농협들이 쌀 수매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 벼값이 오르고 한두 달이 지나면 쌀값이 오르는 전례를 볼 때 앞으로 연말 쯤에는 쌀값이 올라갈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수입쌀값이 국내산 쌀보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더 이상의 쌀값 하락을 막아주는 병풍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국회비준이 늦어져 내년에는 올해분 수입량 2만2천557t과 내년도 수입물량 3만4천여t이 상·하반기에 풀릴 것으로 예상돼 쌀값이 다소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면서 "그러나 올해 쌀 생산량이 평년작을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수확기 산지 쌀값이 이미 20% 정도 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쌀값 추가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양곡가공협회중앙회 이범락 회장은 "정부가 공공비축물량으로 100만 섬을 추가로 매입하고, 농협들도 추가로 벼 매입 계획을 밝히면서 전국의 산지 벼값이 오름세로 돌아섰기 때문에 더 이상의 쌀값 하락은 없을 것"이라며 "수입쌀이 시판된다 해도 급격한 쌀값 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라고 말했다.

▲수입쌀 시판에 따른 정부대책

정부는 수입쌀 시판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산지표시 등을 위반한 양곡 유통업자 등을 신고하면 최고 1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기로 하는 등 양곡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또 쌀 등 농산물의 원산지를 속여서 판매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농업인과 소비자 등으로 구성된 농산물 명예감시원을 종전 2천800명에서 1만 명으로 크게 늘렸다. 정부는 농업진흥청에서 개발한 유전자(DNA) 분석을 통한 수입쌀 식별방법을 활용해 원산지 부정유통에 대한 단속도 강화할 방침이다.

아울러 국내산 쌀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맛이 좋고 보기에도 좋은 운광·삼광·고품벼 등 3개 품종을 내년부터 공급하고 2010년까지 6, 7개의 최고품종을 추가로 공급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미곡종합처리장(RPC)이 고품질 쌀을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도록 통합 RPC에 대해 시설·운영 자금을 우대 지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RPC의 자율적인 통·폐합을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등에서 볼 수 있듯 시장개방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며 "추가로 얻은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인 10년 동안 영농 규모화와 고품질 쌀 개발 등으로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쌀 비준안 통과까지

쌀 협상 비준안의 핵심은 쌀 관세화 유예를 10년간 더 연장하자는 것이다.한국은 1994년 4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결과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관세화 유예 혜택을 받았다. 당시 2005년 이후 쌀시장 개방 여부는 2004년 내에 쌀 수출국과 협상해 결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미국·중국·태국·호주·인도·파키스탄·아르헨티나·이집트·캐나다 등 9개국과 협상을 벌여 2014년까지 10년간 관세화 유예를 추가 연장키로 했다.그 대신에 올해 4%(20만5천t)인 의무수입물량을, 2014년에는 기준연도(88∼90년) 국내 평균 쌀 소비량의 7.96%(40만8천700t)까지 늘리기로 했다. 또 수입쌀의 밥쌀용 시판을 내년부터 허용하고 시판물량은 2005년 의무수입물량의 10%에서 2010년까지 30%로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당은 이와 관련, 농가 혼란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관세화 유예가 불가피하며 국제 신인도 문제와 쌀 의무 도입량을 이행하는 데 최소한 40여 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비준안 처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일부 농촌 출신 의원들은 쌀 관세화 유예 협상에 따른 부가협상으로 인한 농가 피해 등을 들어 비준안 처리에 앞서 근본적인 농업회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비준안 처리에 반대해 왔다.

군위 의성·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 특별기고-쌀 개방시대의 세가지 전략

그동안 논란을 빚어왔던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쌀 시장의 추가개방으로 인해 대구·경북지역의 농업도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다른 시·도에 비해 쌀산업의 비중은 다소 낮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농업비중이 높기 때문에 생산의욕 저하, 농업포기현상이 심각하게 전개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가 내놓은 여러 소득안정대책도 농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쌀시장 개방시대에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최고품질의 쌀을 생산하려는 농업인의 자구노력이 중요하다. 소비자의 쌀 수요가 가격보다 품질에 의존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친환경 고품질 쌀 생산에 주력해야 한다.

둘째 수확 후 가공처리분야에서의 브랜드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 지역에는 무려 170여 종의 브랜드 쌀이 생산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인지도는 낮다. 더욱이 같은 브랜드 쌀의 품질마저 균일하지 않아 신뢰를 받지못하는 실정이다.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미질 수준을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확립이 시급하다.

셋째 대규모 생산기반체제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논은 정밀농업 등 첨단 디지털농업기술의 접목이 용이할 뿐 아니라 광범위한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소구획 논을 1ha 정도로 대구획화하는 토지장기개량사업을 2006년까지 벌이는 한편 각각의 논에 맞는 국소관리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생산비 절감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중앙·지방정부 차원의 농지개량 및 소유구조 개편사업 추진이 절실하다. 대경연구원 농림수산연구팀장 유병규 박사

사진: 농민시위-쌀 협상 국회 비준안 통과에 반발한 경북지역 농민이 23일 한나라당 경북도당 앞에서 적재한 벼가마를 불태우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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