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하얼빈'시가 송화강의 벤젠 오염 사태로 주민 이탈 등 대규모 소동을 빚었음을 기억한다.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 하얼빈(哈爾濱)은 안중근 의사(義士)의 존재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기억되는 도시다. 안 의사는 그 역에서 97년 전, 1909년에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쏘아 죽였다. 묘하게도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 뜬 날(10월 26일)과 이등이 죽은 날이 같은 날이다.
◇ 남북한이 2주 전 개성에서 안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을 내년 3월 26일에 착수하기로 했다는 낭보는 반갑다. '3월 26일'은 바로 안 의사 기일(忌日)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안 의사가 뤼순(旅順)감옥에서 사형당한 뒤 묻힌 곳이 후문 뒤편 '언덕'은 분명한데 정확한 매장 위치를 두고 남북한 실무진의 얘기가 달라 난항이라는 거다. 일대를 다 뒤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중국 측이 남북이 합의한 '단 1곳'만을 가져오라고 요구해 난감하다는 것이다.
◇ 여기에도 남북 및 중국 3자(者)의 외교술의 발휘가 요청된다. 북한은 이미 1970년대와 80년대에 두차례나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지난 6월 정동영 통일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공동 발굴을 제안해 성사된 것이다. 그러나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았을 경우 유해를 어느 쪽에 모시느냐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국민은 알고 있지 않다. 남측은 안 의사 친손자(재미동포)의 '남한 안치 동의서'를 받아 놓았다지만 북측은 안 의사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임을 고집할 것이다. 당장의 문제는 중국 측에 발굴 면적의 확대를 납득시키는 일이 먼저다. 여기에 3자 간 외교술이 필요한 것이다.
◇ 유해 현장을 떠나 이등박문이 피흘리며 쓰러진 하얼빈역을 방문해 본 한국인들은 또 하나의 허탈감에 젖는다고 한다. 97년 전의 그 총성, 안중근 의사가 '원수'를 사살한 뒤 외쳤던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의 그 절규는 전혀 느낄 수 가 없다는 것이다. 유해는커녕 의거 현장에 비석 하나, 표지판 하나 없는 부끄러움만이 느껴진다는 것이니 하얼빈역, 그 역사의 현장에 안 의사의 '흔적'을 새겨 놓는 일 또한 시급하다 하겠다
◇ 오늘 아침, '안중근 담론의 금기'를 깬 논문집이 일본에서 발간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등박문을 사살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개적'객관적 접근의 신호 같아 반갑다. 고이즈미의 행실은 역겹지만….
강건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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