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명언 세 마디

올해 들었던 말들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압권 세 가지를 추려봤다.

첫 번째. "박근혜 대표를 뽑은 게 아녀?"

올해 재선거를 치른 어느 지역에서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동네에 모여 주고받았다는 선거 후일담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출마한 줄 알았는데 당선 사례하러 온 이는 엉뚱한 사람이었다던가? (당선된 분을 폄훼하려는 뜻은 추호도 없다. 할머니, 아주머니들 역시 그럴 뜻은 없었을 게다.)

어쨌건 그만큼 박 대표는 인기가 좋다. 대구'경북에서는 물론 전국적인 현상이다. 재선거 치르면서 자신에 대한 지지율과 함께 한나라당 지지율도 확 끌어올렸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이 잘못해서 누리는 반사이익 덕분만은 아니다. 한나라당 내 반박세력조차 요즘은 박 대표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노력한다지 않는가.

그런 박 대표의 꿈은 물론 대권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기 좋고 당을 장악했다손 쳐도 당 바깥의 대권주자들까지 포함해서는 선두가 아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거부감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어두웠던 장면들이 오버랩되는 탓이다. 사람들이 박 대표를 좋아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박 대통령 때문이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박 대표 뽑은 줄 알았는데…"라는 말이 대선이 치러진 뒤 나올 가능성은? 대권후보는 다른 사람이 맡되 박 대표가 열심히 도와서, 박 대표 좋아하는 유권자는 그래서 한나라당 후보 찍고, 박 대표 안 좋아하는 사람은 또 그래서 한나라당 후보 찍는다는 시나리오다. 공상의 비약?

두 번째. "대구시장이 그렇게 높은 자리예요?"

한 국회의원이 내년 대구시장 선거 후보 영입을 위해 어느 유명 대기업 CEO를 만났더니 그 CEO가 이렇게 되물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 한 토막이다.

정말 이런 말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 법하겠다 싶다. 재벌회사 대표로, 매년 수십 조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비즈니스 톱리더인 분에게 대구시장을 맡으라 한다면 대구시장 자리가 그렇게 높냐고 반문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우리한테는 대구시장, 경북도지사가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라는 점이다. 그렇게 높은 자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민선으로 뽑은 지 10년. 그동안 우리는 시장, 도지사로 어떤 분을 모시느냐 하는 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 시장, 도지사 한 사람 잘 뽑아놓으면 먹고살고 숨 쉬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대통령 자리 넘볼 수 있는 깜냥 정도 가진 분을 모시고 있는 서울특별시와 경기도를 보라. 청계천과 서울시청 광장, 경기도 파주LCD단지가 대구나 경북에는 왜 안 되나?

세 번째. "연봉 6천만 원씩 4년간, 2억4천만 원 내놓겠습니다."

내년부터 지방의원들은 유급제다. 연봉으로 기초의원은 5천만~6천만 원쯤, 광역의원은 7천만~8천만 원쯤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년 지방의원 선거에 나서겠다는 이들이 많다. 얼마나 되는지 정당에서도 잘 헤아리지 못한다.

또 내년 선거에선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가 적용된다.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대구'경북에서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그러니까 세 번째 말은 공천 받으려고 하는 기초의원 출마희망자들이 공천 결정권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건네는 얘기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펄쩍 뛴다. 요즘 같은 대명천지에 공천헌금 따위를 받았다가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믿고 싶다.

유급제는 지방의회로 인재를 몰리게 하므로 크게 보면 이득이다. 그러나 출마희망자들이 유권자가 아닌, 국회의원을 상전으로 모시게 되면 좋은 제도를 갖고 있더라도 헛일이 된다. 지금 같은 대구'경북 정치풍토에서는 출마희망자들 상전은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유권자 두려워하는 정치인은 누가 만드나? 당연히 유권자,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본다. 내년 지방선거가 후보들만의 잔치가 아닌 유권자들의 잔치, 후보-유권자 모두의 승리가 될 가능성은? 이 가능성만큼은 공상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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