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덫

일본은 올해 한자로 '애(愛)'를 선택했지만 우리나라의 2005년을 마무리짓는 한자는 단연코 '황(黃)'이 아닐까. 전 세계 생명 공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온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가 조작한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실은 데다 원천 기술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배아 줄기세포의 존재까지 의심받으면서 대한민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황 교수뿐 아니라 전 국민이 '누렇게' 질린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대의 사기 과학자로 몰락할 위기에 처한 황 교수는 서울대 조사위로부터 연구실마저 폐쇄당해 배아 줄기세포에 대한 원천 기술을 재현해 낼 기회마저 차단될 국면이다. 실험과 검증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자가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데 대한 배신감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 당연히 단죄해야 한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같은 연구팀이던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이 인격 모욕까지 서슴지 않으며 황 교수를 치는 폭로를 터뜨리기 전부터 줄기세포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이 예산을 쏟아부었고, 국내 의학계와 수의학계, 과학자와 종교계의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위기를 극복하며 인류를 위하는 과학의 힘은 양심과 겸손에서 나온다. 황 교수는 정치적 논리나 언론 플레이 대신 소처럼 일하며 확실한 성과로 말했어야 했다. 논문 조작은 치명적인 실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황 교수에 대한 음모론이 퍼져 나가는 것은 생명 공학의 신기술이 창출할 부의 규모가 석유 시장보다도 더 크기 때문이다.

◇경기대 고준환 법학과 교수는 "수사 결과를 봐야 되겠지만, 이번 사태의 배후에 거대한 음모 세력이 덫을 놓은 게 아닌가"라는 인터넷 글을 올렸다. 고 교수는 "더 이상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 영국 등의 기술 패권 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는 휘어져 있으므로 빛은 태양 주위에서 휘어진다는 것을 예언하고도 핍박받다가 1919년 에딩턴이 개기 일식 때 태양 주변의 빛이 휘어져 들어옴을 관측함으로써 명성을 회복했다. 다들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의 황 교수에게 그런 기적을 바라기는 어렵지만 원천 기술을 증명해 보일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최미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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