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환상이 깨진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인 것 같다. 잠결에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가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나가시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긴 조그만 머리를 이리 저리 굴려 봐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아무리 산타할아버지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능력자라고 해도 전 세계 어린이가 얼마인데 하룻밤 새 다 돌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원하는 선물을 그렇게 꼭 집어서 알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 산타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프기보다는 어른들만의 비밀을 알아챈 것 같아 으쓱했던 것 같다. 그러고도 몇 년간 원하는 선물을 받기 위해 어른들의 '공모'에 적극 참여하기는 했지만.
요즘은 산타가 넘쳐난다. 어린이집 원아들의 집을 방문해 덕담과 함께 부모가 대신 마련한 선물을 건네주는 산타에서부터, 일당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산타, 산타복장을 하고 길거리에서 호객을 하는 산타까지…. 도처에 산타들이 출몰한다.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 산타 때문에 산타의 신비감 또한 여지없이 무너진다. 직장 동료의 똘똘한 여섯 살짜리 딸내미는 "산타 할아버지가 현관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굴뚝이 없는 아파트의 경우 결코 낭만적(?)이지 않지만 산타할아버지가 현관으로 걸어 들어올 수밖에.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양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특별한 추억을 남겨야만 한다는 강박증마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토록 설렘 속에 기다렸던 크리스마스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허탈감을 느낄 때가 많다. "왜 그럴까"라는 고민이 생기는데 결국 내용 없이 형식만 있는 문화 때문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TV 특집 프로그램과 상품광고 속에만 존재하고 있다면 과언일까. 채우려고만 하는 문화는 결코 풍성할 수 없으며, 베푸는 문화가 진정으로 행복한 문화다.
올해는 모금액에 따라 수은주가 올라가는 '사랑의 온도계'가 예년보다 낮다고 한다. 그런 중에도 익명의 기부자들이 꽁꽁 언 세상을 녹이고 있다. 암에 걸린 남편이 세상을 뜨자 준비해뒀던 치료비를 내놓은 주부, 만기적금 1천만 원을 부모 잃은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쾌척한 기부자, 신문, 종이상자, 빈 병을 팔아 마련한 돈 140만 원을 전달한 칠순 할머니….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산타가 아닐까. 올 크리스마스엔 옷차림만 흉내낸 '무늬만 산타'보다 이웃과 공동체를 돌아보는 진짜 산타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산타클로스가 있어 그 큰 보따리에 호남지방에 내린 눈 좀 싹 담아 가셨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정일선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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