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일본 남쪽 규슈 벳푸시의 아시아태평양대학(APU:Asia Pacific University) 학생회관. 세미나실에서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학생,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이슬람계 학생, 키가 훤칠한 러시아 유학생 등 10여 명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한국인 유학생 정동균(29) 씨를 얼싸안았다. 외국인 최초로 일본철도공사(JR)에 입사하는 정씨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
옆 동아리방에도 인종전시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피부색이 전혀 다른 학생들끼리 영어와 일어, 들어 보지도 못한 말을 지껄이며 발표회 준비로 떠들썩했다.인구 20만 명의 자그마한 도시에 자리 잡은 APU는 4학년생 95%(일본 유명대학 졸업생 평균 취업률 80%)가 졸업전 취업을 예약하고, 학생 절반이 유학생들이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영어·일어 2개 언어 강의를 전면 도입하고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전문가 양성이라는 명확한 교육목표로 차별화한 점이 성공 요인이었죠."
일본 대학들은 1990년대부터 입학자원이 격감하면서 국제화에서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유학생이 크게 늘어 8만 명 이상의 외국 학생들이 일본 대학에 유학을 왔지만 4년제 대학만 500개가 넘어 학교당 평균 유학생은 200명도 안 되는 수준이다. 취업장벽, 높은 생활비와 수업료, 국제 공용어 강의 부족 등은 외국 유학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
나카노 마사히로 APU 부학장은"학교법인 리츠메이칸(立命館)이 기존 교육시스템으론 국제화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전면 영어강의에 유학생 취업까지 지원하는 '신개념 국제대학'으로 만든 것이 APU대학"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개교한 APU는 불과 5년 만에 재학생 4천417명 중 유학생이 42%(1천855명)를 차지할 정도로 국제화에 성공했다. 6개 대륙 80개국 학생들이 유학 중이고 117명의 전임 교수 가운데 외국인 교수도 50명이 넘는다. 2004년 졸업생들은 98%가 졸업전 취업이 확정됐고 올 졸업생의 95%가 취업을 예약했다.
◆국제화 네트워크가 성공기반
"개교 초반에는 각국 저명 인사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됐고 이제는 유학생과 그 가족들이 APU 유학을 적극 추천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히라이 요시아키 대외협력 담당은"유학생 유치 성패는 결국 이들의 취업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고 유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개교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해나갔다"고 했다. APU는 개교 4년 전부터 각국 국가원수, 대사, 기업인 등 300여 명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 학교 홍보와 졸업생 취업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21세기를 주도할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재양성'을 목표로 한 APU의 교육방향에 자문위원들이 적극 공감, 학교의 홍보대사가 되고, 졸업생들의 취업을 지원했다. 또 기업인들은 불과 3년 만에 400억 원의 발전기금을 모아 주었다.
APU의 높은 취업률은 학교 측의 치밀한 취업전략 때문이지만 자문위원들과 기업인들의 역할이 크다. 한국인 교직원 주현주(27) 씨는"자문위원들과 기업인들을 수시로 학교에 초청해 교육환경과 학생들의 능력을 보여주고'APU가 인재의 보고'라는 인식을 심어준 탓에 기업들이 학교까지 찾아와 학생들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APU는 유학생 학부모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인다. 유학국별로 학부모회 결성을 유도하고 학교에 초청, APU에 대한 애착을 갖도록 한다.
APU 한국학부모회장 김광훈 씨는"선진적이고 차별화한 교육시스템, 높은 취업률, 2, 3개 국어를 구사하도록 하는 교육모습을 보고 나니까 저절로 APU 홍보맨이 됐다"고 평가했다.
◆영·일어 2개 언어 강의와 특성화
"영어를 잘 해도 한국 대학에는 유학 올 엄두가 쉽게 나지 않을 것 같아요. 큰 대학에 영어강의가 거의 없다시피한데 놀랐습니다."대구대에 유학중인 중국인 왕난 씨. 그는 대구·경북대학들이 국제화를 외치고 있지만 유학생들이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교육시스템이라고 했다. 그의 지적대로 대구가톨릭대의 영어강의는 5개, 그나마 많다는 계명대는 150개로 전체 강좌의 3%도 안된다.
대구권 대학의 경우 학교별로 외국인 학생들이 100~300명씩 유학하고 있지만 80~90%가 한국어를 하는 조선족이나 중국 학생들이다.APU는 유학생 흡인력을 높이기 위해 영어와 일어 2개 언어 강의를 전면 도입했다. 1, 2년 기초 교육과목은 물론 3, 4년 전공강의도 영·일어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어학실력이 달리는 학생들을 위해 단계별 강화코스를 만들어 집중 교육한다. 이를 위해 교수채용도 대학본부가 전권을 행사, 전공실력과 어학능력이 검증된 교수를 뽑는다. 학교 측은 2개 언어 강의에 따른 학생 추가유치 효과가 30% 이상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학제도 21세기를 주도할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가 양성 목표에 맞춰 아시아태평양매니지먼트학부(APM)와 아시아태평양학부(APS) 등 2개의 실용학부만으로 특성화하고 수업방식도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세미나식 교육 중심이다. APM은 국제경영을 기초 과목군으로 하고 마케팅과 기업전략, 회계와 재정, 국제비즈니스와 비교경영, 뉴비즈니스와 이노베이션군으로 구성됐다.
APS는 국제사회학을 바탕으로 아시아지역의 개발과 환경, 관광, 미디어, 비교사회·문화, 국제사회거버넌스, 환경자원정책, 지속가능개발 등에 대한 연구를 한다.
실러 바이런 교수는"세계 각국의 교수와 학생들이 섞여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고 공부를 게을리하면 도태되는 교육환경이 일본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외국 학생도 일본 유수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APU는 세계 80여 개국에서 유학온 학생들로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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