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생명倫理

우리는 언제나 외부의 영향력 때문에 삶이 흔들리게 마련이다. 정치 제도나 경제 정책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정치나 경제처럼 강력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에 못잖다. 인류 역사에 큰 변화를 이끌어 온 게 바로 과학이었다. 이는 생활의 편의성을 넘어 삶의 질 자체에 직접 관여하므로 그 영향력은 갈수록 더 커지고, 인권 문제도 사상'이념보다 과학기술이 더 좌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인간의 존엄성'을 놓고 볼 때는 또 어떠한가. 이를 떠올리면 우리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윽한 아름다움'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인권과 윤리에 얽힌 모든 복잡한 문제를 풀어 줄 수 있는 '열쇠'라는 믿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하나의 목적이나 이념적 구호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과학이 발달할수록 윤리 기준은 더 정치하고 섬세해야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간 배아 복제와 생명윤리를 다루는 특별연구팀(TFT)을 2004년 초에 발족했으나 그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생명윤리 연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 문제를 제어할 가이드라인을 담은 연구 용역이 발주되고, 보고서까지 제출받았으면서도 뒷짐을 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인권위는 6천만 원의 예산을 타내 204만 원(3.4%)만 집행했다. 게다가 2천만 원을 들여 배아 복제 연구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용역 보고서를 마련했으나 권고안 마련 등 후속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 용역을 의뢰받은 서울대 법학연구소가 보고서를 통해 '잔여배아는 인간 생명의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냉동 기간 5년 미만이면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더구나 난자 채취 때 예견되는 위험도와 불편을 반드시 문서로 기록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뒷짐만 졌던 인권위는 이제 와서 '시급한 인권 침해 사안에 우선순위가 밀린 것뿐'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도대체 맞는 소린지 모르겠다. 황우석 교수팀 사태로 나라가 온통 떠들썩하지만, 생명윤리에 대한 제대로 된 점검이 절실한 때다. 그 핵심적인 키워드는 '공공 감시'와 '자발성'이라는 생각도 새삼 해보게 된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