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손에는 성경, 다른 한손엔 동네일"

목사서 이장 변신 김이구씨

"목사님보다는 이장님으로 불러 주세요. 마을사람들은 이장이 더 친근하답니다."

영천시 청통면 대평리 129가구에 305명의 주민이 모여사는 대평마을의 이장님은 김이구(54) 목사다. 18년 전 대평마을에 들어와 사일교회를 개척한 김 목사는 지난 7일 마을주민의 만장일치로 이장에 선출됐다.

영천 청통면은 신라 천 년 고찰 은해사가 지척인 데다 크고 작은 암자만도 10여 개가 넘어 불교인구가 많은 곳.

"목회자가 이장직을 수행하는데 고충도 있겠지만 주민들의 종교성향은 이장직을 수락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대평마을은 최근 들어 개발사업이 늘면서 인심이 나뉘고 갈등도 생겼다. 마을주민들은 성직자로서 중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를 마을대표로 추대했고 주민들의 기대대로 며칠 만에 마을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이장 취임 후 그는 마을 대소사를 공개하고 각종 사안은 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또 김 목사 자신도 관행적으로 이어져 오던 이장 모곡제(가을걷이 후 마을주민이 이장에게 수고비로 나락 한 말과 겉보리 한말을 주는 제도)를 자진 폐지, 투명한 운영을 다짐했다.

"이장직을 하면서 달라진 점은 마을 대소사로 시청과 면사무소를 하루에도 몇차례씩 오가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것과 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막걸리가 늘어난 점입니다."

'한 손에는 성경, 다른 한 손에는 마을 대소사'로 좌충우돌 눈부신 활약을 보이는 김 이장.농사에도 이력이 난 그는 모를 따로 내지 않고 직파하는 기술은 이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대가다.

그는 "목회자로서 전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거부감을 일으킬까봐 교회에 나오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장직을 맡은 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도가 돼 목회자로서의 사명과 본분도 잊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영천·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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