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인의 피가 섞여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미녀들로 넘쳐나며 정열의 나라, 태양의 나라로 불리는 스페인. 가톨릭신도가 전국민의 80%로 가톨릭 종주국으로 불리고 있으며 유네스코 등록 문화유산이 38점으로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성을 띠고 있는 곳이다.
국토는 우리나라의 5배나 되지만 인구는 4천500만 명으로 비슷하고 2004년 말 기준으로 관광수입 360억 유로, 관광흑자 300억 유로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는 북유럽 등 추운나라에서 관광 및 휴양 오는 사람들로 연중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세계적인 휴양처로 시선을 끄는 것은 도시의 편안함이다. 높아야 7층 내외가 고작인 아파트들은 관광객들에게 평온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스페인이 관광객 수에 있어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 관광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최 이후 관광산업 육성에 힘을 쏟은 결과다. 여기에다 자국 브랜드는 없으면서도 외국의 상용자동차 공장을 유치, 자동차 생산국 8위에 오른 것이 급성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소형(70~80%)이 주류다. 검소한 국민성과 함께 소형차량에 대한 정부의 저액세금, 주차난, 기름값 등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같은 낙원에서도 전기가 모자라 전체 수요량의 33%가량을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그에 따른 방사성폐기물이 다량 발생, 방폐장을 운영하면서 무엇보다도 친환경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카브릴 방폐장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두 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지중해 해변가 도시인 세르비아. 여기서 다시 고속열차(AVE)를 이용, 2시간 30분 만에 수도인 마드리드에 도착해 승용차로 2시간 거리의 코르도바에 닿았다. 방폐장은 인구 30만의 코르도바시에서 국도로 서북쪽 100km거리에 있다.
카브릴 방폐장은 산길에서 대형 트럭을 만나면 곤란할 정도로 좁은 산길을 무려 50km나 달려 들어간 산맥의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950년대 군기관(I.E.U)이 운영하던 우라늄 광산이 있었던 곳.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방치됐다가 1983년 국회에서 이곳을 방폐장 부지로 선정했고 해당 안달루시아 주의회 의결을 거쳐 1984년 정부 회사인 엔레사(enresa) 설립, 1987년부터 사유지 매입 등 건설공사 착수, 1992년 국영방폐장 준공의 과정을 거쳤다.
7개 원전으로부터 250~800km의 거리에서 특수트럭으로 폐기물을 운반해오는 이 방폐장의 전체 부지는 1천126ha, 이 중에 사용 중인 부지는 20ha다. 사용기간은 당초 2008년까지로 봤지만 현재 전체 가용량(5천m³)의 51%가량 찬 상태. 하지만 반입물량이 갈수록 줄어 2025년까지 사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엔레사 측은 종전까진 오염된 옷과 부산물 등 전체를 매립했지만 현재는 방사능 측정 기계로 부산물의 오염도를 측정, 오염 부분만 도려내 저장하는 방식으로 그 수량을 줄이고 있어 사용기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992년 이래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의 0.08%를 적립, 엔레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했으나 지난해 4월부터 적립금을 0.017%로 낮추고 차액은 국내 7개사 9개 원전(민간업체)이 부담토록 했다.
◆친환경성
스페인은 포도주 주 생산국이며, 올리브유 생산 1위국이기도 하다. 이를 입증이나 하듯 코르도바에서 방폐장에 이르는 도로변은 온통 포도와 목화밭, 올리브유 농장이다. 산길에는 와인 병마개로 쓰이는 코르크 나무가 빽빽하다. 국도를 벗어나 방폐장까지 이어지는 산길(50km)로 접어들자 양쪽으로 노루와 각종 산새들이 길을 안내하듯 고개를 내밀었다. 코르크나무 사이로 솟은 사슴뿔은 사슴농장을 연상케 할 정도다.
나무껍질(코르크)을 채취한 후 상처가 아물듯이 회복되고 있는 대부분의 코르크나무는 밑둥이 병든 나무처럼 자주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지만 4년이 지나면 본래의 나무껍질을 되찾게 된다.
방폐장 입구(40km 거리) 100여 가구 규모의 호르나추엘로 마을을 낀 호르나추엘로군은 인구 5천 명으로 벌꿀과 올리브유, 코르크 산업이 주 소득원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벌꿀과 올리브유 등은 전국 제일의 품질로 인기리에 팔리고 있으며, 방폐장을 운영하는 엔레사에서도 이들 특산품을 생산농가로부터 구입, 연간 5천여 명의 방문객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이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방폐장이 평화와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호르나추엘로에서 만난 마리아(68) 씨는 "방폐장이 있어서 사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며, 그 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이라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면서 조용하던 마을에서 사람 구경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예나 지금이나 자연환경은 변한 게 없고 농사도 그대로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친환경성은 방폐장 측의 철저한 관리와 환경단체와 정부의 감시와 관심으로 인해 충분히 확보되고 있는 것이다. 방폐장 내에는 자체적으로 표본지점을 공중 6, 식물 9, 물 6, 지하수 19 등 40곳의 표본지를 두고 방사능 오염여부를 상시 검사하고 있고 10, 20, 40km까지 단계별로 동·식물과 농산물, 사람 등을 대상으로 오염 여부를 조사하고 있지만 20여 년 동안 미량의 방사능도 검출된 적은 없다.
코르도바와 마드리드에 각각 위치하고 있는 방폐장 홍보관에는 연간 학생과 학자, 연구원 등 2만여 명이 방폐장의 기술적 환경적 측면의 지식을 듣고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찾고 있다. 특히 유럽에는 그린피스 등 활동이 강력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 방폐장에서는 촘촘한 환경관리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여기에다 마드리드에 본부를 두고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국립환경감시단까지 가세, 방폐장 일대의 안전과 친환경성을 지키고 있다. 방폐장 측은 방사성폐기물 저장고 위에 특수방수를 한 뒤 자갈과 2m높이의 흙을 덮어 나무를 심어 방폐장 건설 이전의 산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한 방폐장을 자연상태로 복구할 계획을 세워두고 모형도를 제시하고 있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사진: 방폐장 주변 산 자락에는 고품질의 코르크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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