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 기고] 지방분권에 역행하지 말라

국회에서 심의 중인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관련 법률안은 원래 취지가 대법원의 사건 부담을 줄이고 개별 사건의 심리를 더욱 충실히 하기 위해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숱한 토론과 공청회 등을 거쳐 마련했다.

이는 대법원과 거리가 먼 지방 주민들로 하여금 소송에 따른 비용과 시간 낭비를 줄이는 등 국민들의 소송 편의를 위해 마련된 방안이었고 시대적 조류인 지방분권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사법제도 개혁의 대표적 사례로 상당수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런데 국회 입법 과정에서 본래 입법 취지를 망각하고 오히려 서울에만 고등법원 상고부를 설치해 전국의 고등법원 판결을 다시 심판하도록 하고, 대구.부산.광주.대전 등 4개 도시의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안을 백지화 시키는 방향으로 변칙 통과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먼저 지방분권화에 역행하는 처사임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수도권으로만 집중돼 나라의 균형발전이 이뤄지지 않는 폐해가 있었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지방분권화가 시대적 조류로 형성된 지 이미 오래 됐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지난해 말 국회에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관련 법률안이 제출됐다.

그런데 국회는 심의 과정에서 소송비용과 시간의 절감, 상고심 재판의 효율적 접근성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열망을 도외시 한 채 별도의 상고법원 필요성이 전혀 없는 서울에만 고등법원 상고부를 설치하고 진정 필요한 지역에는 설치하지 않는 것은 중앙집권적 발상에 불과할 뿐이다.

국회의 발상은 성숙한 법률문화발전에도 역행하는 처사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고등법원에 상고부 제도를 시행한 전례가 있다. 당시는 사법제도 및 법률문화가 제대로 성숙되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서울고법 뿐만 아니라 지방 고법에도 상고부를 설치 운영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사법제도가 완전히 정착한 이 때 지방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하지 않고 서울에만 설치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일본도 고등재판소가 일부 상고심을 담당하고 있지만 도쿄 뿐만 아니라 지방 소재 고등재판소에서도 상고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가 지난 17일 국회법사위원회 전체 회의 석상에서 지역 인사와의 유착 우려, 지방에서의 우수법관 확보 어려움, 법령 해석의 통일 등을 위해 각급 고등법원 전체에 상고부를 설치하는 것보다 서울 고법에만 설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대구.부산.광주.대전에는 우수한 법관들이 없다는 것인지, 유독 지방 고등법원의 상고부에만 지역인사와의 유착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대법원은 답변해야 한다.

법령 해석의 통일 문제는 직권 이송 및 특별상고제도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데도 대법원 관계자의 이런 발언은 극히 편협한 발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국회는 각성해야 한다. 사개추위가 2년여 기간 동안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아 만든 안을 합리적 이유도 없이 당리당략에 따라 변칙적으로 서울에만 상고부를 두는 쪽으로 개악하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반민주적인 행태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해당 국회의원들은 지역민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임을 밝혀둔다.

특히 이런 일들에 대해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돼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낀다.

국회는 아무런 논리적 합리적 근거도 없는 시도를 당장 중단하고 차라리 고등법원 상고부 제도를 도입하지 말고 대법원을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아니면 굳이 일부 고등법원에만 상고부를 설치하려 할 경우 대법원이 자리잡고 있는 서울에는 설치하지 말고 지방에 상고부를 둬 국민의 상고심 재판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

서정석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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