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性徹) 스님이 성주사(寺)라는 절에 잠시 머물던 때의 얘기다.
스님이 법당에 들어가 봤더니 법당 위에 '법당 중창 시주 ○○○'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었다.
'○○○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마산 시내 약국을 하는 신심 좋은 불자인데 그 사람이 중창비용을 다 댔다는 대답이었다.
다음날 큰스님이 절에 오신 걸 알고 시주한 불자가 인사차 찾아왔다. 스님이 짐짓 칭찬하는 인사를 건넸다.
'소문을 들으니 당신이 돈 많이 내서 법당 중창했다고 칭찬이 많던데 간판을 보니 당신 신심 있는 줄 알겠어.'
불자가 흐뭇한 표정을 짓자 스님이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간판 붙인 위치가 잘못된 것 같애.'불자가 의아한 눈으로 '왜 그렇습니까'고 쳐다보자 성철 스님이 대답했다.
'간판이란 남들이 많이 보기 위해 하는 건데 이 산중 절간에 붙여 놔 봤자 몇 사람이나 와서 보겠어? 그러니 저 간판 떼어서 마산역 앞 광장에 갖다 세우자고. 그러면 수천 명이 보고서 "'마산의 누구누구가 법당을 고쳤다는군'하고 칭찬해 줄 것 아닌가. 이왕 간판 얻으려고 시주한 건데 이 산속에 걸어두고 있을 거 뭐 있어. 내일이라도 당장 옮기자고."
칭찬인가 싶었는데 그제야 말뜻을 알아 들은 불자가 '아이쿠 스님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고 엎드렸다.
'몰라서 그런 거야 허물이 있나 고치면 되지.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그날 불자가 제 손으로 떼낸 중창 시주 기념 간판은 절 부엌 아궁이로 바로 들어갔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양과 보시의 참뜻을 깨우친 성철 스님다운 일화다.
나흘 후면 석가탄신일, 벌써부터 사찰과 길거리 곳곳에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는 연등(燃燈)이 내걸리고 있다.
연등의 유래는 1천4백40여 년 전 신라 진흥왕 시절 전쟁에서 순국한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절에서 7일 동안 간등(看燈)이란 이름의 등을 밝힌 행사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당시의 연등 모양은 연꽃'수박 등 과일이나 꽃 모양을 따온 것과 북이나 종, 항아리 같은 기물(器物) 모양을 본뜬 것, 용과 봉황, 잉어, 거북 같은 동물 모양의 연등, 칠성등, 오행등 같은 천문(天文)에 관련된 연등이었다. 요즘은 불교용품 제작 전문 기업들이 홈페이지까지 만들고 전통양식의 종이 연등에서부터 전자소자로 된 제품까지 생산 판매한다. 디자인도 팔강접등, 조립등, 유동, 종등, 주름등 등 현대적 감각이 접목된 톡톡 튀는 연등들이 불자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줄잡아 1천2백여만 명이라는 불자들이 초파일에 켜는 전국 사찰의 각양각색 연등 시장 규모는 얼마쯤 될까. 일부 사찰의 초파일 연등 안내서 경우 가족연등은 5만 원 안팎, 조상님들을 위한 일년연등은 10만 원 내외로 나와 있다.
얼마 전 동해안 어느 사찰에서는 억대 연등이 걸린 적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게 대충 셈치면 전국의 초파일 연등 규모는 엄청나다.
성철 스님 간판 일화처럼 내 이름 드러내려고 하는 위선적 보시만 아니면 연등 공양은 금액의 많고 적음이 시비가 될 수 없다.
초파일 연등을 보면서 1조 원을 내놓고도 감옥에 잡혀가는 우리네 세상살이를 돌아보게 된다.
8천억이든 1조 원이든 부처님 가르침대로 누가 낸 건지 모르게 또 권력에 목 졸리기 전에 그늘에 사는 이웃을 위한 시주라도 했더라면 얼마나 신선하며 감동적인 얘기라도 됐었을까. 한데 정권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돈 토해내고 구명(救命)용 시주하듯 하는 재벌을 보노라면 비자금 갖다바쳐야 살 수 있는 그들이 불쌍한 건지 아니면 부처님 말씀대로 '지붕 잇기를 성기게 하면 비가 올 때마다 곧 새는 것처럼 평소 바른 마음을 조심해 다지지 않고 허욕을 부리면 그 탐욕이 곧 이것(나를 보호할 지붕)을 뚫어 찬비를 맞는다.'는 깨우침을 모르고 투명경영을 조심 않았던 그들이 어리석은 것인가.
이번 초파일은 1조 원짜리 헌금 간판 앞세우고도 감옥 간 못난 재벌보다 기만 원 공양 연등 한 개 달랑 매달고도 마음은 부자인 착한 우리 중생들이 더 복된 축일이 될 것 같다. 석탄일, 불자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큰 자비가 함께하시길.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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