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초등학교 4학년 어머니입니다. 요즈음 주변에는 초등학생에게도 논술을 가르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습니다. 독서지도를 해 주는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책 읽기는 좋아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논리력이 부족한 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읽는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과 논리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여름 방학 때 해 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에 대해 조언을 구합니다.
답 : 감포 앞 바다는 대구 사람들이 답답할 때 즐겨 찾는 곳입니다. 바다도 바다려니와 경주 덕동댐을 지나 거기까지 가는 길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지만 바다로 가는 전 과정이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줍니다. 추령재는 감포 가는 길의 압권입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로 가고 있는지 속세를 떠나 도인을 만나러 심산유곡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착각하게 할 정도로 골이 깊습니다. 추령재에 터널이 뚫리고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바다에 빨리 이를 수 있다며 터널을 즐겨 이용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우둔함과 고집을 자랑스러워하며 여전히 옛길을 따라 추령재를 넘어갑니다.
'도로'는 넓고 곧을수록 좋으며 목표 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0에 근접하게 하는 것을 이상향으로 삼습니다. 포장도로와 터널은 도로의 이상을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길'은 비포장과 꾸불꾸불함과 우회를 좋아합니다. 길은 자연스러움과 여유를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소위 '도로의 문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건물도 빨리 지어야 하며, 공부도 학원에 나가 미리 배워야 합니다. 다지지 않고 이렇게 속도만 중시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삼풍백화점 붕괴,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등 수많은 사건들은 졸속함이 가져온 비극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맨발로 흙을 밟으며 느긋하게 주변의 풍경도 즐기면서 길을 가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이름 모를 들꽃과 대화도 나누고 때로 낙조를 바라보며 까닭모를 슬픔에 잠겨볼 수 있는 '길의 문화'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에는 속도를 중시하는 '도로'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여유를 중시하는 '길'을 따라 가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독서든 논술이든 지름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서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야 배운 내용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고 창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방학이 오면 자녀와 함께 추령재 칠십 굽이 옛길을 넘어 감포로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기 아이가 어릴 때부터 명석한 판단력과 정교한 논리적 사고력을 가지길 원합니다. 최근 논술 열풍이 불면서 어린이 독서 교실이나 철학 교실이 유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책을 읽히고 독후감을 쓰게 한 후 첨삭 지도를 해 주는 것이 주된 지도 내용일 것입니다. 혹 질문하신 분의 자제도 이런 식의 독서 지도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지도하는 선생님의 능력과 역량에 따라 아이의 논리력과 사고력을 배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중·고등학생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초등학생은 논리와 관계되는 책보다는 동시나 동화, 전기와 같은 작품을 읽어야 합니다. 책읽기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나중의 공부를 위해서도 먼저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합니다. 진한 감동을 통하여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감수성을 배양해야 합니다. 풍부한 교양과 바탕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논리를 가르치면 아이를 정서적 불구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사에 논리를 앞세우고 감성이 메마른 사람은 죽은 나무와 같습니다. 글쓰기에 앞서 예민한 언어 감각과 예리한 통찰력을 길러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어린 시절 책이 주는 감동을 통해 배양됩니다. 재미있게 많이 읽다 보면 속도는 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