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술-악마적 자유

겨우 짐승의 경계를 벗어난 사람들이 햇볕 내리쬐는 언덕 티라노사우르스의 발자국 앞에 무리지어 둘러서있다. 쓸려 들어간 포도가 짓이겨져 며칠이 지나 물빛이 고혹적이다. 한 모금 맛을 보니 보통 맛이 아니다. 너도나도 먹어보는데 첫맛은 달고 뒷맛은 약간 씁쓸하면서 묘하다. 기분이 좋아져서 자꾸 마시다 보니 모두가 곯아떨어지고 만다. 5천 년 전 이집트의 벽화에는 '맥주는 물로 된 빵이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 모든 나라에도 술에 관한 신화가 있고 또 고유의 것이 있다. 공통적인 것은 이것이 생산, 풍요, 축제 등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배부른 행복을 주신 천지신명에게 남아넘치는 곡식으로 술을 빚어 감사드린다. 술을 나누어 마시고 며칠 밤낮을 춤과 노래로 즐긴다. 영고 동맹, 박카스의 축제다.

행복이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넘치도록 성취하는 것이며 다른 것에 의해 제약당하거나 강제당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만족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것이다. 술은 행복의 상징이고 그 본질은 자유다. 술을 마셔 이성과 오성과 감성이 하나로 노래하고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과 뒤엉켜 하나로 춤춘다. 타자와의 격 없는 소통이 가능해진다. 내?외부의 자유의 한바탕 흐드러짐이다. 술은 카오스다.

주법은 술을 대하여 다루는 형식, 질서를 의미한다. 혼돈을 위한 질서다. 그러나 혼돈도 질서도 궁극의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행복이다. 나의 행복이고 너의 행복이며 그대로 우리의 행복이다. 행복의 결과로 술을 마시며 행복하기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다. 크고 작은 주법을 만드는 것이다.

지산동에서 제일한의원을 하는 신승렬 원장님과 맥주를 한잔하는 참이다. 몇 순배 거하게 술이 돌았다. 문득 형님이 주법을 고치자고 하신다. 맥주는 시원함으로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인데 잔을 비우자마자 다시 채워 놓으니 미지근해져서 도무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술을 남겨놓았다가 그것을 마져 비우면 이어 잔을 채우고 그것을 마셔 다시 있는 듯 없는 듯 남겨두자는 제안을 하신다. 같은 한 잔인데 계속하여 시원한 것을 마셔 그때서야 행복해진다. 악순환이 선순환이 된 것이다.

우리의 깊은 행복을 위해 마시는 걸 본다면 언감생심 술이 우리를 마셔 악마적 자유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커다란 보름달 아래, 작은 주법으로 행복을 깨우쳐주신 형님을 위해 건배!!!

황보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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