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재로 주저앉은 3천500년전 집터 발굴

저장용 대형 토기 3점 고스란히 출현

불시에 화재를 만나 폭삭 주저앉은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집터가 경기 가평군 상면 연하리에서 화재 직후의 원래 상태로 확인됨으로써 당시 생활상을 복원하는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재)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박경식)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시공사 경남기업)이 시행하는 청평-현리 도로건설공사 예정구간에 포함된 연하리 일대를 9월21일 이후 발굴조사한 결과 기원전 1500-2000년 정도로 유적 축조 연대를 잡을 수 있는 조기(早期) 청동기시대 집자리 두 곳을 찾아냈다고 9일 밝혔다.

이중 1호 주거지는 일부 구역이 조사예정지역을 벗어나는 바람에 전체 규모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북동-남서 방향으로 장축(長軸)을 두었으며 바닥 평면 기준 규모는 6-7m 정도로 나타났다.

지표면을 파 내고 조성한 바닥에는 사질성이 강한 점토를 깔았고 북동쪽 벽면에 가까운 내부에 화덕(부엌과 같은 화로) 시설을 설치했다.

조사 결과 높이 각각 40㎝ 가량에 이르는 대형 저장용 호(항아리형 토기) 3점이 주거지 내부 북쪽 모서리 벽면을 따라 나란히 땅에 박힌 채 확인됐다. 조사단은 장독을 연상케 하는 이들 토기 내부에는 곡물과 같은 저장용품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내용물 분석을 외부기관에 의뢰했다.

이밖에 집터 내부에서는 주둥이를 따라 바깥으로 돌출한 띠를 두른 이른바 '각목돌대문토기'(절상돌대토기)가 출토됐으며, 장경호(長頸壺. 목긴항아리)도 1점 확인됐다.

석기류로는 장방형 칼과 도끼, 화살촉, 방추차, 천공구(穿孔球), 갈돌과 갈판 세트 등이 출토됐다. 이 중 천공구란 유물은 크기는 테니스공 만하지만 가운데를 관통하는 큼지막한 구멍을 뚫어 놓고 있다. 겉면은 그라인더로 간 것처럼 섬세하게 가공된 상태다.

최근 강원 정선 아우라지 유적에서도 2점이 출토된 바 있는 이 천공구의 기능은 자세하지 않지만, 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후대의 홀(笏)처럼 그것을 지닌 자의 신분과 위세가 높음을 증명하는 징표"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나아가 이 주거지에서는 미처 가공되지 못한 미완성 석재류가 여러 점 출토됐는가 하면, 토제 어망추는 50여 점이 확인됐다. 이들 어망추는 애초에 어망추로 제작된 것은 물론 깨진 토기편을 재가공한 것도 발견됐다. 이른바 재활용품인 셈이다.

또한 벽면이나 지붕에 사용됐다고 추정되는 불탄 서까래 같은 목재류도 확인됐다.

최 교수는 "연하리 유적은 신석기시대 전통인 빗살무늬 토기가 돌대문토기와 동시에 출현한다는 점에서 그 시기는 기원전 1500-2000년 무렵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런 유적들이 최근 들어 한반도 중부지방 일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개시 시기를 학계 통설보다 훨씬 올려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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