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부 만세'…상인동 '예르 케익·카페' 성공 비결은?

빵집에겐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다가오는 이 맘 때가 더 없이 바쁜 시기다. 대구시 달서구 상인1동 '예르 케익·카페'도 그랬다. 신나게 울려 퍼지는 캐롤송 사이로 매장은 마치 전쟁터를 엿보는 듯 했다. 손님이 앉는 테이블마저 빵들이 차지했고 직원들의 손놀림도 분주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찾아갔을 때도 한참 서 있어야 할 만큼 정신없는 분위기다. 하지만 박중철(40) 대표는 "예전에는 12월이 한 달 더 있다고 할 만큼 호황이었지만 매년 갈수록 그런 특수가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고 엄살을 떤다.

박 대표의 빵집은 여느 빵집과는 다르게 '케잌 카페'로 불린다. 손님들이 빵을 골라 매장에서 먹으면서 갖가지 음료수와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어서다. 박 대표는 "대구제과제빵기술분과위원회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이기기 위해 카페 형식을 도입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구엔 이런 형태의 빵집이 5군데 정도 있다고 했다.

박 대표의 빵집엔 특이한 점이 또 있다. 빵을 만드는 공장이 따로 있다는 것. 박 대표는 "16평의 조그만 매장에선 다양하고 많은 빵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상가 내 매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12평 규모의 공장을 마련해 여러 가지 빵을 구워 즉시 판매와 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1985년 경남 거창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 대표는 주위에서 빵 굽는 일을 해보라는 권유를 듣고 무작정 대구로 왔다. 당시만 해도 제빵 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전무한 상태라 빵집에 취직해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우는 것이 전부였다. 6년가량 빵집에서 일한 박 대표는 10년 뒤 대구은행 본점 인근에 개인 빵집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 미숙한 서비스로 인해 장사는 밑바닥에서 허덕였고 이 일로 심심찮게 부인 김선희(36·여)씨와 부부싸움도 벌여야 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다. 2001년 인수한 대구 월성동의 빵집이 대박 행진을 펼쳤다. 박 대표는 "목이 좋아서인지 하루 매출액이 120만 원이 훌쩍 넘었다."고 회고했다. 그런 성공을 계기로 2005년5월에 지금의 빵집을 열었고 수많은 대형 프랜차이즈점과 맞서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요즘 빵집도 워낙 프랜차이즈점들이 많이 생겨 기술력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매달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기술세미나에 꼭 참석한다. 세미나를 통해 신제품이 소개되면 그 것을 응용해 더 좋은 빵을 만든다는 것. 이론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박 대표는 "빵도 워낙 유행이 빨라 틈틈이 관련 서적을 읽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박 대표가 만든 빵은 모두 400여 가지. 모든 빵이 박 대표가 6개월가량 전념해 직접 개발한 이스트(효모)를 사용해 만든다. 박 대표는 "일반 상업용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잡냄새가 없고 위장병이 있는 사람도 손쉽게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예르 케익·카페는 박 대표와 부인 김씨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 박 대표는 빵 만드는 일에 전념하다보니 하루종일 공장에서 생활한다. 반면 매장 관리는 김씨의 몫. 김씨는 "여러 가지 빵을 무료 시식할 수 있게 했고 최근엔 선물용도 만드는 등 마케팅에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가끔 무료 시식만 하고 가버리는 손님들이 있긴 하지만 더 큰 홍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앞으로 박 대표는 "현재 개인 빵집들이 프랜차이즈에 밀려 힘이 없는데 개인 빵집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다시 공장으로 향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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