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김종길-'설날 아침에' 중에서
어김없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 한 해는 저마다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까? 한 해의 마무리가 좋으면 지난 1년 동안의 모든 일들은 추억으로 남지만 끝이 좋지 않다면 좋았던 기억마저 외면하고 싶어진다. '유종의 미'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연말이면 사람들은 한번쯤 해돋이와 해넘이 여행을 꿈꾼다. 산이나 바다를 찾아 해가 지고 뜨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일 또는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다잡아보기 위해서다.
경주 대왕암은 새해 해돋이를 보기에 알맞은 곳이다. 대왕암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구름을 뚫고 바다 위에서 점점이 떠오르는 태양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대왕암의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떠오르는 희망의 불덩이가 원형을 이루는 장관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조용히 떠오르는 태양은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아니 침묵해야만 한다. 이 경이로운 태양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작은 희망을 바다에 던져놓으면 바다는 아름답고 신비롭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할 만한 추억을 안겨줄 것 같다. 그것이 염원에 대한 해답이 아니어도 좋을 듯하다.
신라 30대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죽어서도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굳은 의지가 살아 있는 곳. 바다 안개가 자욱해지면 한 마리 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다. 하지만 일출의 장관을 가로막는 것은 용이 아니라 갈매기 떼. 이곳의 갈매기들은 낯을 가리지 않는다. '끼룩끼룩' 하면서 수많은 갈매기가 일출을 배경으로 비상하는 실루엣은 사람들을 한순간 꿈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많은 무속인과 신도들도 하나둘씩 자리 잡고 자신들의 소망을 절대적 믿음을 통해 대왕암 앞에서 갈구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삼각대를 둘러메고 대왕암의 일출을 담기 위해 많이 찾는다. 일출을 잘 보기 위한 장소는 따로 없다. 계절별로 해가 뜨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인데 대왕암의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가장 많이 찍는다고 한다.
찰나의 해돋이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려 대왕암에서 점점 멀어질 때 아쉬움은 새해에 대한 새로운 희망으로 바뀌는 듯하다.
▶또 다른 볼거리
일출은 순간적이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기 싫다면 주위 명소를 둘러보고 오는 것도 좋다. 대왕암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이 봉길리 해수욕장. 해변이 모래밭이 아니라 자그마한 자갈돌로 이루어져 파도가 치면 돌 구르는 소리가 듣기 좋고 물이 유난히 맑다.
이견대도 대왕암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다른 왕들처럼 화려하고 거창하게 꾸민 능을 마다하고 동해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이 용으로 화한 모습을 본 곳이라는 '비룡재천 이견대인'에서 따온 이름이다. 또 신문왕이 세상의 파란을 없애고 평안하게 하는 피리인 '만파식적'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왕암에서 대종천 냇가를 조금만 올라가면 문무왕이 짓기 시작해 신문왕이 완성했다는 감은사의 터가 나온다. 두 개의 3층 석탑과 주춧돌만이 절의 흔적을 대신해 주고 있다.
▶가는 길
경부고속국도 경주IC를 빠져나와 경주 시내를 통과해 보문관광단지 옆으로 난 4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양북면 어일리에서 우회전해 대종천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봉길리 해수욕장이 왼쪽으로 보이는데 대왕암은 그 앞바다에 있다. 대구에서 두 시간 정도 소요.
대구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 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남행 버스를 타고 문무대왕릉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경주시청 문화관광과=054)779-6396.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