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세상] ⑤우리는 '디지로그'로 간다

따뜻한 디지털이 끌린다

전기신호의 온(On)·오프(Off) 즉, 0과 1의 나열인 디지털 신호 자체에 '의미'는 없다. 사람들이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특성이 파형(派形)의 연속적인 물리량 즉,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날로그적 본성 때문에 디지털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때 '혁명'으로까지 불리며 떠들석하게 등장했던 디지털 기술은 그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날로그 감성을 속속 불러들이고 있다.

# 디지로그라야 팔린다

LG경제연구원은 2006년 마케팅 세 가지 키워드 중 하나로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를 합친 용어인 '디지로그'(digilog)를 꼽았다. 차가운 디지털 제품과 서비스에 따스한 감성을 입히는 디지로그 현상들은 최근 들어 그 중요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MP3 플레이어, PC 등 디지털 제품 중에는 디지털 특유의 편리성과 아날로그 감성이 접목된 것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냉장고 광고를 보더라도 과거에는 절전, 냉각효과 등 성능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요즘에는 브랜드의 이미지와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크게 히트를 친 '초콜릿' 폰은 아날로그적 감성 마케팅이 효과를 발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일본의 닌텐도사가 최근 출시한 비디오게임기 'wii'는 소니사가 출시한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에 비해 그래픽 등의 면에서 크게 떨어지는 사양임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채택, 플레이스테이션3를 압도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wii에서는 막대기 모양의 무선콘트롤러를 TV 앞에서 휘저으면 화면 속의 캐릭터가 골프채를 치거나 총을 쏘는 동작 등을 따라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SN 메신저는 새로운 버전을 발표하면서 자필로 채팅할 수 있는 '잉크대화' 기능을 추가했다. 이 기능은 키보드 자판에 익숙해 있는 디지털 세대에게 네모칸 공책에 연필로 꼭꼭 글씨를 눌러쓰는 아날로그적 낭만을 느끼게 해준다.

# 디지로그 현상들

디지로그 현상은 제품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in' 서비스 역시 디지로그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디지털 문화는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가 있는 쌍방향 세계다. 네이버 지식in은 네티즌들이 매일매일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축적하며 공유해 키운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디지털 백과사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싸이월드'를 빼놓을 수 없다. 싸이월드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한국인들의 특성인 '관계'를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싸이월드는 '일촌' 개념을 만들어, 집단의 관계에 더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네티즌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나홀로' 신세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 일상 속의 관계 문화를 디지털화해 재현한 것이다.

# 인간에게 봉사하는 디지털

이기태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홍콩에서 열린 'ITU 텔레콤월드 2006'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 "차세대 혁신은 정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기술, 나아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열어주는 기술"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결국 디지로그의 화두는 결국 얼마나 쉽고 자연스런 인터페이스(interface)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사용자 편의의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지 않는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에는 미래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웹2.0'이라는 개념도 새로운 기술이라기 보다는 사용자 중심의 인터넷 환경을 도입하는 트렌드를 일컿는 말이다.

박광진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장은 "디지로그는 디지털 기술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개념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면서 "아날로그적 기반과 감성이 결합되어야 디지털 기술은 시너지 효과가 커지고 결국 인간생활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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