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서오이소! 2007 경북 방문의 해] 영양·봉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매서웠다. 찬 바람 속에 흙내음이 흘렀다. 대청마루 건너 기둥과 서까래에 부딪혀, 장독대를 비껴 흙담 너머로 흘렀다. 그 내음은 산과 들판, 나무에서도 흘러나왔다. 산과 흙,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향기를 뿜었다. 문학의 향기였다. 주실마을이 그랬다. 두들마을과 감천마을도 그랬다.

산을 올랐다. 싱그러운 솔향이 코끝을 간질거렸다. 나무는 말이 없었다. 산새 소리도 숲에 묻혔다. 다람쥐만 가끔 바스락거렸다. 연화봉 기슭, 산 지킴이의 방에는 따끈한 약차가 손님을 맞았다. 곁에는 청량사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줄기, 청량산은 그렇게 고즈넉했다.

'사람의 손때를 묻히기 두려운, 육지 속의 섬' 영양과 봉화는 흙냄새와 인간미가 물씬 풍겼다.

◆영양

▷주실·두들·감천·금촌마을

'차운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조지훈의 '완화삼' 중에서)

'지훈 시공원'이 산과 어우러져 있는 주실마을. 나무계단을 오르며 돌에 새긴 조지훈의 시 20여 편을 음미했다. 조지훈 생가, 지훈문학관과 더불어 한양 조씨 집성촌의 이 문학 동네는 산과 나무를 배경으로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했다.

전통가옥 30여 채가 언덕배기에 자리한 두들마을. 작가 이문열의 고향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사대부집안 요리서를 쓴 정부인 안동 장씨가 터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금시조'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이문열의 작품 속 숱한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묻어난 무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을 창간한 오일도의 고향 '감천마을', 화가 금경연과 유·불교 문화가 깃든 '금촌마을' 등은 바로 영양이 '문학과 예술의 고향'임을 증명하고 있다.

▷선바위

일월산 끝자락 부용봉 아래 두 바위가 우뚝 서 마주보고 있다. 선바위 남신상은 화를 막아 복을 얻고, 아이를 업은 듯 서 있는 여신상은 아기를 점지하는 산모의 여신이란 얘기가 전해진다. 선바위관광지구에는 수령 360년의 소나무 분재를 비롯한 분재수석전시관, 동굴형 민물고기 전시관, 고추홍보전시관 등이 눈길을 끌었다.

▷서석지와 연당마을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민간정원의 하나인 서석지. 정원 밖에는 넓은 가슴을 지닌 은행나무 한 그루가 400년 비바람을 홀로 감내하며 지키고 있다. 정원 안 북쪽에는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 등 '사우단(四友壇)'이 꽁꽁 언 연못을 외롭지 않게 했다. 서석지를 조성한 정영방 선생은 연못 속 90여 개의 돌에 '옥계척' '와룡암' '어상석' 하는 식으로 일일이 이름을 붙여 놓았다. 동래 정씨 집성촌, 연당마을이 서석지를 살포시 보듬고 있었다.

▷반딧불이 생태공원

수하계곡을 끼고 장수포천이 흐르는 마을 주변. 희귀 곤충과 달팽이 등이 서식하는 생태학교와 천문대, 청소년수련원 등이 아이들 자연학습장으로 한몫하고 있다. 6월부터 10월 사이에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영양산촌생활박물관

물고기 잡이, 사냥 도구, 봄철 산나물 다듬기, 여름철 까치구멍집, 꿀 따기, 동굴 기도처, 민속놀이 검색대 등 우리네 산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아이들의 눈과 귀를 희롱한다.

◆봉화

▷청량산 트레킹

낙동강을 서쪽 기슭에 낀, 말 그대로 '맑고 깨끗한' 청량산. 금탑봉 오른쪽 절벽인 어풍대,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가무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 등 숱한 절경을 품에 안아 '작은 금강산'으로도 불린다.

주차장 입구 '입석'에서 30분쯤 오르니 연하봉 기슭에 자리한 내청량사(응진전)가 나왔다. 고려 공민왕이 애틋하게 아꼈다는 노국대장공주의 영정, 석가모니와 16나한상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응진전에서 에둘러 보니 (외)청량사가 금탑봉과 기암절벽에 폭 파묻혀 있었다. 청량사 초입, 산 지킴이의 방에 들어서니 9가지 약초로 만들었다는 '구정차'가 손님들을 맞았다. 마신 찻잔을 씻어주기만 한다면 누구나 그냥 마실 수 있는 보시였다.

산 속 찬바람을 녹이는 구정차, 산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인적에 무심한 다람쥐는 그렇게 청량산의 아침을 상쾌하게 했다.

▷닭실마을

5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한과 전통마을'. 조선시대 충재 권벌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제상에 유과를 올리기 시작한 게 유래가 됐다고 전해진다. 한과공장 노인들이 찹쌀과 멥쌀로 만든 한과를 나눠주는 풍성한 시골 인심이 관광객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영화 '스캔들'을 찍은 아름다운 정자 '청암정'과 충재유물관도 곁들일 수 있는 눈요깃거리다. 닭실마을은 현재 더 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재정비 공사가 한창이다.

▷명호이나리강변 레프팅

영월 동강 못지않게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여름철 레프팅 코스다. 청량산의 절경을 바라보며 낙동강과 운곡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여름 레프팅, 겨울 얼음썰매를 만끽할 수 있다.

▷오전약수터

오전리 약수는 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녹슨 쇳물'을 마시듯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몸에는 좋단다. 주민들은 엿과 약수를 함께 먹어야 궁합이 맞다고 했다. 약수터 주변 음식점에서 만드는 한방 닭백숙도 제맛이다.

▷방짜유기 공방

5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놋그릇 수공예품(경북도 무형문화재 22호)이 전통 그릇의 향을 좇는 이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이번 주 여행코스: 영양 선바위지구-두들마을-주실마을-서석지-봉화 청량산트레킹-오전약수터-유기공방-닭실마을

*'어서 오이소' 다음주(2월 10, 11일) 코스는 '정해년 소원기행-군위·영천' 편입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영양·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봉화·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Internet Explorer 6 버전의 경우 이미지를 클릭 한 후 오른쪽 하단의 확대 단추(화살표 모양)를 누르면 더 큰 해상도로 보실 수 있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