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샌드위치 나라의 헛된 장담

한 취업정보 업체가 직장인 1천140여 명을 대상으로 소속 기업체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적 있었다. 19.8%만이 재직 회사의 경쟁력이 높다고 생각할 뿐 51.9%는 성장 잠재력이 없다고 느낀다는 게 결과였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들은 소속 기업의 殘餘(잔여) 수명 또한 평균 6.3년에 불과하다고 내다봤다. 중소기업은 3.1년밖에 안됐고, 벤처는 5.9년, 대기업 역시 17.4년 후면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長壽(장수)를 예상하는 경우도 이유가 특이했다. 신제품 개발 능력이 뛰어나서라고 한 경우는 36.4%, 환경 변화 대처 능력을 든 경우는 50.1%에 그쳤다. 반면 63.9%는 우수 인재 확보'유지 노력을 꼽았다. 사람을 소중히 하고 그들에게 비전을 주는 기업만이 스스로도 비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일 터였다.

이 조사 결과가 보도되던 작년 12월에 세계 3대 헤드헌팅 회사 중 하나라는 '이곤 젠더'의 그럼바(59)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전 지구적 CEO 시장에서 숱한 경영자들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봤다는 그의 말은 지금껏 기억에 남는다. "최근 5년간 좋은 CEO의 자질 요건에 변화가 있었다. 매출 많이 올리는 데 열중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이젠 조직의 비전을 보여주고 활기를 북돋워주는 CEO가 각광받는 시대이다."

같은 시기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권도 완간됐다. 일본인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70)가 15년 만에 드디어 입을 뗐다. "로마 제국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제대로 파악한 뒤 그에 적절한 제도를 만들고 유지'보수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덕분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세상에 가장 중심 되는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얘기에 다름 아닌 것으로 들렸다.

한때 히딩크 감독의 '경영술'이 화젯거리가 된 적 있지만, 이번 달 초에는 축구계의 또 다른 두 인물이 선풍을 일으켰다. 그 중 FC서울 팀의 세놀 귀네슈(55) 감독은 '축구의 영업사원'을 자처했다가 드디어는 '귀네슈 경영학'의 元祖(원조)로 주목받기에 이른 사람이다. 이기고 있어도 공격하라, 축구는 축제이고 쇼다, 그래야 팬이 오고 축구가 살고 감독도 먹고살게 된다…. FC서울을 90분 내내 전쟁 치르듯 뛰게 하고 궂은 날에도 4만 명 가까운 팬을 운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의 이 신조라고 했다. 월드컵 이후 시드는 듯했던 프로축구의 인기가 되살아나는 것이 바로 그 덕분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또 다른 주인공은 '인천 유나이티드' 팀의 안종복(54) 사장이다. 인천은 불과 3년 전 창단돼 첫해 꼴찌를 했던, 돈도 없고 스타도 없는 시민축구단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이듬해 대뜸 리그 준우승 기록을 세웠다. 더욱이 지난해엔 5억 원이나 되는 흑자를 기록하더니 2년 내에 코스닥 상장을 마치겠노라 선언하기까지 했다. 대기업으로부터 엄청난 재정 지원을 받고도 연간 50억 원가량의 적자를 낸다는 게 한국 프로구단 아닌가. 그 기적의 한복판에 안 사장이 있었다. 계약금조차 없는 무명 선수들을 데려 와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 성장시키는 게 그의 비법이었다. 그 맛에 팬들이 운집하자 자연히 광고주가 달라붙어 수입 증가에 가속도가 생겼다. 급성장한 선수들은 3억∼7억 원의 이적료로써 팀의 살림밑천이 돼 준다고 했다.

우리나라 형편이 여러 면에서 샌드위치 꼴이 됐다고 해서 야단인 게 요즘이다. 오늘아침엔 올해 대졸자 채용 규모가 작년보다 3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섬뜩한 기사까지 나왔다. 반면 일본에서는 해외로 나갔던 공장들까지 2002년 이후 U턴 행렬을 잇는 중이라고 했다. 무엇이 두 세상을 이다지 다르게 만들었을까? 역시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한 광고 문구가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망한 조직 앞에 멍한 리더 있다." 대통령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온갖 장밋빛 장담들이 두렵다.

朴 鍾 奉 논설위원 paxkorea@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