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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核(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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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한 것은 1942년부터다. 비밀리에 추진해온 '맨해튼 계획'에 투입된 개발비만도 20억 달러였고 완성된 핵폭탄은 모두 3개였다. 1개는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모골드 사막에서 실험에 성공한 TNT 2만t 위력의 실험용이었고 나머지 2개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됐다.

그런데 피폭국 일본이 핵실험을 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재작년 국내 한 TV방송이 일본의 핵개발 비화를 방송한 바 있다. 1941년 일본 육군의 주도로 도쿄대 이화학연구소에서 핵개발을 시작했는데 나치의 기술과 재료를 지원받았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3일 뒤 1945년 8월 12일 흥남 앞바다에서 일본이 작은 원폭 실험을 했다. 미군 공습으로 이화학연구소가 파괴되자 원폭실험을 한반도로 옮겨와 진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미국의 원폭 투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발언으로 규마 후미오 방위청 장관이 사임했다. 일본 국민 86%가 핵무기 보유를 반대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사임은 정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핵 알레르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최근 일본 자민당 의원 32%가 '핵무장 논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는 조사결과가 보도됐다. 일본의 핵무기에 대한 잠재된 열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 장차 핵 보유와 결합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일본은 100년전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아시아를 수호한다는 '대동아공영'의 가면을 쓰고 온갖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군부와 정치인들의 가치관과 현재 일본의 정치인'학자들의 인식이 180도 달라졌을까.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대아시아 정책관을 들여다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895년 대만을 침략한 일본에 대한 현지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후쿠자와는 "섬 전체를 쓸어 버리되 원주민 같은 것은 안중에 두지 않아야 한다. 병력으로 용서없이 소탕해 섬 전체를 관유지로 삼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동양평화, 아시아공영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추악한 짓을 해온 일본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볼 때 금기시된 일본의 핵무장이 가까운 장래에 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걱정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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