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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옥입니다] 망각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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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선명한 기억도 그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바래고 마침내 잊힌다. 모든 사물에 유효기간이 있듯 우리의 기억장치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어쩌면 忘却(망각)이란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神(신)의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우리가 일상의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면…?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명수 푸네스'의 주인공은 不忘(불망)으로 인한 고통을 말해준다. 말에서 떨어져 뇌를 다친 소년은 포도나무의 모든 잎사귀와 가지들과 포도알의 수까지도 그대로 뇌에 입력된다. 무한대의 기억력을 소유하게 된 소년은 뇌에서 떠나지 않는 온갖 자잘한 기억들에 시달리느라 도무지 잠을 잘 수 없게 된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지나간 것은 아름다워 보인다고. 슬픔과 고통마저도 훌쩍 세월의 강을 건너간 뒤에는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채색되더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기억의 감각이 疼痛(동통)으로 바뀌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인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아픈 기억으로 남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며 살갑게 대한 사람일수록 돌아가신 뒤 잘한 일은 기억나지 않고, 섭섭하게 한 일들만 생각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좋은 추억, 나쁜 기억이 씨실날실로 짜이는 게 인생이다. 모두들 가능하면 좋은 일만 생기기를 원하고, 행복했던 시절의 것들만 기억하고 싶어한다.

최근 미국의 하버드 대학과 캐나다 맥길 대학 연구팀이 아픈 기억을 지우는 약을 개발했다고 해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맥길 대학의 카림 네이더 박사 말로는 아픈 기억에서 감정적인 부분은 지우고 의식적인 부분은 그대로 둠으로써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되 그로 인한 마음아픔은 느껴지지 않게 된다고 한다. 또한 뉴욕대학의 조지프 레두스 박사도 특정한 한 가지 기억을 지우는 약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에 간 사람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명의 희생자, 남은 21명의 피랍자들. 그들과 가족들이 겪고 있는 상상할 수도 없을 고통을 떠올리면 밥 먹고 잠자는 것조차 미안스러워진다. 부디 하루빨리 그들이 돌아오기를…. 그래서 지금 그들의 몸과 영혼을 칭칭 묶고 있는 흉악한 기억들을 망각의 강 저너머로 힘껏 내던질 수 있게 되기를….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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